[기자수첩]  ‘30대 영끌족’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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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30대 영끌족’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다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9.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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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30대 영끌족’이 안타깝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말마따나 법인과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비싸게 내놓은 매물을 젊은 층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받아주는 양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왜 그럴까. 집값 하락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장밋빛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저당 잡힌 청춘들은 멈춰 서지 않는 것일까. 기자는 이들의 심리적 이면에 IMF와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가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한순간에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을 당하며 가정의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세대. 막상 사회에 진출해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의 가치가 하락,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어려운 세대.

그러면서도 최근 수년간 부동산 자산 가치의 급상승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부유한 부모를 두고 있는 세대. 오로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는 시대에서 자라온 30대들의 가슴속에 물질적 결핍과 불안감이 싹트게 된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든 간에 결핍과 관련된 인식 대상을 빠르게 포착한다. 집이 바로 그것이다. 삶을 사는 공간이 아닌 부를 ‘축적’하고 부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수단. 이런 결핍과 관련한 강력한 목표는 다른 목표들이나 고려해야 할 사항을 잊게 한다. 

결핍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놓음으로써 당연하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강제하는 탓이다. 하버드대 행동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과 프린스턴대 심리학자 엘다 샤퍼(Eldar Shafir)는 이를 대역폭의 제한이라고 불렀다.

다양한 선택지가 없다면 인간은 마치 긴 터널 안에선 멀리 밝게 빛나는 출구만 보고 뛰어가는 상태가 된다는 게 멀레이너선의 설명이다. 30대 영끌족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유감스러운 시대, 계급의 울타리를 만든 기성세대, 방관만 하는 정부에도 조금씩 책임이 있다.

이들이 주는 씁쓸함은 마치 불편한 성장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많은 이가 터널에 갇혀 있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 터널로 들어가 경고해야 한다. 또한,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커다란 충격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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