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불경 쓰는 기술 사경장(寫經匠)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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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불경 쓰는 기술 사경장(寫經匠)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예고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0.04.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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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장(寫經匠) 첫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김경호 씨 인정 예고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은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을 예고하고, 김경호(金景浩, 남, 1963년생, 서울 서대문구) 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

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을 유포하거나 공덕을 쌓기 위해 경전을 베끼는 일, 또는 베낀 경전으로 이번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사경장’은 불경(佛經)을 쓰는 사경(寫經)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사경 작업을 하는 모습.사진=문화재청 제공
사경 작업을 하는 모습.사진=문화재청 제공

우리나라 사경의 역사는 삼국 시대 전래된 불교의 경전을 세상에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8세기 중엽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스스로 공덕(功德)을 쌓는 의미로 변화했다. 통일신라 시대 때(745~755년) 제작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제196호)’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경 유물이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國敎)가 되면서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사경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고려사(高麗史)등에 따르면 국가에서 사경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관을 운영했고, 당시 사경은 국가 최고의 역량을 동원한 당대 문화의 집약물이었다.

경을 필사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경을 필사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특히,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등 금자(金字)․은자(銀字) 형식의 사경이 많이 제작되었고, 충렬왕 대에 중국에 수백 명의 사경승(寫經僧)을 파견하는 등 대외적으로 고려 사경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쇠퇴했으나, 일부 왕실과 사찰에 의해서 명맥은 유지됐다.

사경 제작은 크게 필사, 변상도(變相圖) 제작, 표지 장엄 세 가지로 구성되며, 세부적으로는 금가루 발색, 아교 만들기, 종이의 표면 처리와 마름질, 잇기, 선긋기, 경 필사, 변상도 그리기, 표지 그리기, 금니 표면처리 등 10여 가지 공정을 거친다.

변상도를 제작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변상도를 제작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사경 제작에는 서예·한문·불교 교리·회화 등에 대한 숙련된 기능은 물론이고 경전의 오자·탈자가 없어야 하므로 고도의 집중력과 장기간의 제작 시간이 필요하다.

변상도(變相圖)는 경전의 내용이나 그 교의를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김경호 씨의 작품
김경호 씨의 작품 '감지금니변상도'사진=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사경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경호 씨는 40여 년간 사경 작업에 매달려온 장인이다. 과거 사경은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다수의 전문가가 참여했었지만, 지금은 재료 준비, 필사, 회화를 한 명이 모두 하는 형태다.

그는 오랜 기간 문헌과 유물을 통해 사경의 재료, 형식, 내용을 연구하고 이를 기술로 승화시켜 1997년 조계종에서 개최한 ‘제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2010년 ‘대한민국 전통사경기능전승자(고용노동부지정, 제2010-5호)’로 선정됐다.

김경호 씨는 각종 교육 기관에서 사경 관련 강의를 하고, 다년간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서적을 저술하는 등 사경의 전승을 위해 활동해왔다. 아울러 전통 사경체(寫經體)를 능숙하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변상도 등 그림의 필치가 세밀하고 유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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