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국몽은 한국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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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중국몽은 한국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 송병형 기자
  • 승인 2020.02.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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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지난 2014년 7월 서울대 강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평화적 남북통일을 지지하면서 “중국 인민은 영원히 한반도 인민의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의 발전에 대해 일각에서는 발전된 중국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중국을 매서운 악마로 형용했다. 이런 생각들은 옳지 않다”며 “진리는 객관적으로 이런저런 유언비어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남북통일을 허용할 테니 ‘미국의 품을 벗어나 중국의 품에 안기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시 주석은 미국 동북아 전략의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도 공략했다. 그는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한중 양국은 항상 서로 도와주면서 모든 고통을 함께 극복해 냈다”며 “400년 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했다. 또 “20세기 상반기에 일본 군국주의가 중한 양국에 대해 야만적 침략전쟁을 강행, 한반도를 병탄하고 중국 국토 절반을 강점, 양국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 대일 전쟁이 가장 치열했을 때 양국 인민은 생사를, 있는 힘을 다 바쳐 서로 도와줬다”고 했다. 반일 정서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말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 주석의 한국 공략법은 제대로 먹혀 들어가는 분위기다. 우한 폐렴 사태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중국인의 입국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이 70만 명 동참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 3일 대통령은 “중국은 우리의 최대 인적 교류국이면서 최대 교역국이다. 서로 힘을 모아 지금의 비상상황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며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는 우한 폐렴 사태를 기화로 중국 혐오를 부추기자는 게 아니다. 중국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심대한 만큼 현실적인 처신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140년 전 중국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혹해 이용만 당하다 망국의 길을 걸었던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한말 조선 대외정책의 가이드라인이 된 ‘조선책략’에서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은 “1000년간 조선의 우방인 중국은 한 번도 조선의 땅과 백성을 탐내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말로 부패와 무능의 극치를 달리던 민씨 정권을 사로잡았다. 청나라 실권자 리훙장은 황쭌셴의 막후에서 조선을 러시아 위협의 방패막이로 삼으려고 했고, 이를 위해 조선책략에서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조선은 청나라를 믿고 미국과 국교를 맺었지만 황쭌셴은 조약 초안 1조에 ‘조선은 중국의 명령을 받들어 미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한다’는 문구를 적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중국의 종주권이 빠진 것은 미국 덕분이었다.

조선의 우방이라는 것도 허언이었다. 임오군란을 진압한 위안스카이는 청일전쟁 때까지 조선에 군림하며 우리의 국권을 유린했다. 고관대작들의 딸들을 첩으로 삼아 개인적 욕망도 채웠다. 그렇다고 청나라가 조선의 바람막이가 된 것도 아니다. 청일전쟁 패전으로 청나라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동양식 근대화의 전범이 될 것 같았던 양무운동은 때깔만 그럴싸한 신기루에 불과했다.

아시아식 사회주의 독재에 뿌리를 둔 현대 중국의 경제굴기도 제2의 양무운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조선은 나라의 명운을 가른 역사적 전환기에 청나라에 휘둘려 강대국에 의지만하려다 결국 일본에게 먹히고 말았다. 덩샤오핑 이후 시진핑까지 그들이 이루겠다는 ‘중국몽’은 우리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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