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라 망치는 통계 장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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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나라 망치는 통계 장난질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9.10.3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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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50년대 말 대약진운동 당시 중국 전역에서는 산업 전 분야에서 터무니없는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한 광풍이 불었다.

농업 분야에서는 뻥튀기 된 수확량을 맞추기 위해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비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 했고, 진흙과 볏짚을 얻기 위해 멀쩡한 집을 무너뜨려야 했다. 공산당 특유의 선전선동으로 전국적인 경쟁이 불붙으며 수만 채의 가옥이 허물어질 정도로 농촌은 폐허가 돼 갔다. 또 깊이갈이를 위해 밤새도록 땅을 갈아엎는 중노동이 이어졌고, 연장이 부족한 곳에서는 손으로 이랑을 파는 농부들도 있었다.

공업 분야라고 다르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생산량만을 늘리기 위한 주먹구구식 제철법을 ‘토법고로’라는 이름으로 강요했다. 현대식 제철법이 중시하는 철의 품질은 고려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쉽게 부러져 사용도 못하는 잡철을 무조건 많이 만드는 게 목표였다. 터무니없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현장에서는 멀쩡한 농기구와 고가의 수입 농기계를 부숴 고로에 집어넣었다. 그래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자 양철 지붕을 뜯어내고 집에서 쓰는 식기까지 잡철을 만들기 위해 포기해야 했다.

이 모든 광란은 단 기간에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를 따라잡겠다는 마오쩌둥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산당 간부들은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또는 징벌을 피하기 위해 치열한 통계숫자 경쟁을 벌였다. 마오쩌둥이 잉여농산물 처분 방안을 고민할 정도로 중국 전역에서 놀라운 성과 보고가 이어졌지만 그저 통계상 숫자에 불과했다. 통계 조작의 대가는 수천 만 명의 아사였고, 권력 유지를 위해 동원한 홍위병들의 광란이었다.

한 역사가는 통계 조작으로 인해 대약진운동의 참사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통계 조작은 이후 중국의 고질병이 됐다. G2 시대에도 중국의 지방정부는 경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통계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

서구에서는 중국의 자화자찬 식 성장률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최근 수년 간 중국의 성장률이 2% 가까이 부풀려졌다고 보기도 한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국가정책을 왜곡하고도 남을 정도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중국 중앙정부 역시 모를 리 없다. 결국 칼을 빼들기에 이르렀다. 시진핑 정권은 이달 들어 허위 통계 보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입법에 나섰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대로 전에 없던 통계 왜곡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정권의 코드에 맞는 인사가 통계청장에 오른 뒤로 일자리 통계 왜곡 논란이 끊이질 않더니 급기야 비정규직 조사를 두고는 ‘통계 사기극’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서 정규직이 35만 명 줄고 비정규직은 86만 명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오자 강신욱 통계청장은 조사방식 상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은 ILO의 새로운 방식에 따른 경제활동인구조사를 2021년 발표하기 위해 올해 3월과 6월 부가조사에서 새로운 방식에 따른 질문도 함께 물었다. ‘고용기간이 정해졌느냐’는 기존 질문에 더해 기간이 정해진 게 없다고 답한 응답자에게 ‘고용 예상기간’을 추가로 묻는 방식이다. 이런 질문이 8월 비정규직 여부를 묻는 조사에 영향을 미쳐 원래 ‘정규직’이라고 답해야 할 35만~50만 명이 ‘비정규직’이라고 답하게 됐다는 것이다. 기재부와 청와대가 이를 거들고 나선 것은 물론이다.

경제 전문가인 유승민 의원에 따르면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는 2002년의 노사정 합의에 따라 2003년부터 17년째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해오던 조사다. 올해 질문지나 지난해 질문지나 달라진 것도 없는데 해석만은 달라졌다. 유 의원은 “국민을 속이겠다고 나선다면 그 정부는 존재할 명분을 잃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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