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5G, 최초와 최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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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5G, 최초와 최고의 차이
  • 이근형 기자
  • 승인 2019.03.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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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많은 사람이 최초이자 최고이고 싶어 한다. 이 중 우열을 가리자면 대부분 최초에 방점을 찍는다. 최초는 지워지지 않지만 최고는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최초에 도전했다. 영원히 바뀌지 않는 기록을 갖고 싶어서다. 북극점에 가장 먼저 도달한 피어리나 남극점을 처음으로 정복한 아문센처럼 최초라는 이름을 남기고자 한다.

최초라는 기록은 최고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최초로 신대륙에 발을 디딘 콜럼버스에게 범선을 내어준 스페인은 중남미에 거대 식민지를 건설했다.

최고는 반드시 최초를 통해 이뤄지지는 않는다. 영국은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다. 앞서 식민지를 개척한 국가들의 잘잘못을 학습했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통신 시장이 최초 논란에 휩싸였다. 세계 최초 5G(5세대 이동통신) 국가라는 꿈이 좌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통신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나서 올 3월 세계 최초 5G 서비스를 구현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사실상 물 건너갔다. 앞뒤 계산 없이 최초라는 타이틀만 바라본 과욕이 빚은 국제적인 망신이다.

세계 최초 5G 타이틀이 갖는 의미는 크다. 기술적 우위를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4차 산업이라는 신천지에 먼저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전 세계 국가들이 세계 최초 5G 국가라는 타이틀에 목매는 이유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 영국, 일본 등 내로라하는 강대국들이 이 경쟁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나라는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의 자존심을 걸고 이 타이틀에 도전했다. 2년 전부터 2019년 3월 5G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꾸준히 준비해왔다. 그러나 5G 지원 스마트폰과 장비 문제로 통신 인프라 구축이 늦어지면서 3월 중 서비스 개시는 어렵게 됐다. 4월이 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예고된 실패다. 몇몇 포퓰리스트가 과욕을 부리면서 무리하게 추진된 측면이 강하다. 수많은 전문가가 ‘차분한’ 준비를 조언했지만 정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통신사들도 규제의 칼을 휘두르는 정부 앞에 군소리 한 번 못하고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3월 세계 최초 5G 서비스를 떠들던 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국제적인 망신을 사게 됐지만 책임지겠다는 이는 없다.

5G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도 중요하지만, 더 큰 과제가 남아있다. 5G를 추진하는 목적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다. 최초가 목적은 아니다. 5G를 통해 침체한 대한민국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4차 산업혁명의 주도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근본 과제였다. 최초 타이틀에 집착하다보니 최고의 서비스는 논의 대상에서 멀어진 듯하다. 서둘러 4월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한다 해도 부실한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상태라면 이전 3G나 LTE(4G) 때처럼 해외 콘텐츠 업체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남 좋은 일’만 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5G 국가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최초보다는 최고다. 제대로 된 5G 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 그 위를 달릴 콘텐츠는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더 낫다.

지금 우리에게는 최초 5G보다는 최고의 5G 서비스로 활력을 잃은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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