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붉은깃발도 신중히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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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붉은깃발도 신중히 내려야 한다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8.12.1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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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17일 예정된 카카오의 카풀 본격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10일 한 택시기사가 국회 앞에서 분신해 숨졌다. 흔히 개혁과 혁신에 대한 반발이 거세면 ‘기득권의 저항’이라고 이름 붙이곤 하지만 택시기사에게 무슨 기득권이 있나 싶다. 오히려 시대변화에 생계를 위협받게 된 약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란 게 맞겠다.

택시기사들을 옹호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설익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으로 지난 1년여를 허비한 정부가 마음이 급해져 또 다시 성급하게 혁신성장 드라이브를 걸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다.

정확히 넉 달 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소득주도성장에 올인 하던 청와대가 규제혁신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자리로 기억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제한하는 제도) 규제를 과거 영국의 ‘적기조례’에 비유하며 규제혁파를 약속했다.

사실 적기조례는 인터넷전문은행보다는 카풀과 비교하는 게 더 의미 있다. 조례가 나온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 산업문물이 꽃을 피우고 집권당인 자유당은 산업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빅토리아 여왕이, 그것도 사랑하던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국정에 손을 놓고 있던 여왕이 친히 적기조례를 선포한 것은 자동차 산업의 부상으로 생계 위협에 내몰린 마부들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금융 기득권을 무너뜨릴 메기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대통령도 이를 염두에 두고 규제혁파의 당위성을 설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풀 문제는 인터넷전문은행 문제와는 다르다. 19세기 후반 자동차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았던 마부들처럼 택시기사들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다. 카풀로 혜택을 받는 다수가 환영하고 있고, 또 한국식 공유경제의 장을 활짝 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닌 것이다.

올바른 방향설정과 명분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급한 일처리는 화를 자초하기 마련이다. 마침 프랑스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카풀 반대 분신사건이 화제가 되는 사이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조끼’에 항복선언을 발표했다. 부유세의 원상복구 요구를 거부하기는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저소득 은퇴자의 사회보장세 인상을 철회한 사실상의 백기투항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2017년 5월에 취임해 해묵은 이념과 결별하고 ‘프랑스병’에 과감히 칼을 댔다. 하지만 유류세 인상 카드를 성급히 추진하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경유차가 대다수인 프랑스에 있어 ‘유류세를 올려 경유차를 퇴출시키겠다’는 친환경정책은 옳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친환경도 먹고살만해야 챙길 수 있는 법이다. 당장 생계 위기에 몰린 저소득층에게는 그야말로 한가한 고답준론이다. 게다가 ‘정책방향을 바꿀 수 없다’(11월 27일 시정연설)는 마크롱의 독선과 불통이 화를 더욱 키우고 말았다. 필립 총리의 유류세 인상 유보 선언에도 노란조끼는 최저임금과 부자세로 타깃을 옮겼고, 이는 마크롱 개혁에 치명타가 됐다. 우리도 붉은깃발을 내리는데 신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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