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집중] 국정원, 인니 특사단 습격 들통 사건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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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집중] 국정원, 인니 특사단 습격 들통 사건의 내막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2.2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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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추락…국제사회에 ‘좀도둑’낙인

[매일일보=변주리·김경탁 기자] 국격(國格)을 입에 달고 살던 이명박 정부가 하루아침에 ‘좀도둑’ 정부가 됐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머무는 호텔에서 노트북을 도둑질 하다 들통이 난 것이다.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를 보며 멋진 액션과 최고의 첩보기술을 상상하다, 이 소식을 접하고 느낀 실망감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첩보기술은 둘째 치고 불법을 저지른 국정원 덕분에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 부도덕한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UAE 원전수주 계약과 G20 정상회담 개최를 성사시켰다며 ‘국격의 상승’을 운운하던 청와대는 ‘국격의 추락’을 야기한 이번 사건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국가의 경제적 풍요가 아닌 도덕적 품격을 의미하는 국격의 의미를 청와대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하따 경제조정장관 등 방한 중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특사단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모하마드 산업장관, 뿌르노모 국방장관, 하따 경제조정장관.

정치권 “대통령 독대 보고를 부활시킬 때부터 예고된 사태”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 갈망이 ‘과잉충성’과 ‘충성경쟁’ 자극

대외 첩보 활동보다 내부 정치에 몰두하다 조직 역량을 깎아먹었다?
‘원세훈 원장’ 취임 후 천안함, 연평도, 리비아 등 무능 사례 이어져

청와대는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을 접견한 후 “인도네시아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방산산업 협력이 지금까지 순조롭게 잘 되고 있고 향후에도 더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브리핑했다. 청와대는 또한 “사실상 이번 접견은 작년 1박4일 대통령 해외출장의 연장선상이고 성과물”이라며 이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를 자랑스럽게 홍보했다.

이번 방문에서 인도네시아 특사단은 우리 정부와 국산 고등훈련기 T-50과 잠수함, 전차 등 포괄적인 방위산업 협력에 합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번 합의가 성사되면 이에 따른 경제적 효과만 수십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잠입해 수집하려 했던 정보는 고등 훈련기 T-50 등 국산 무기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수입협상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시 분위기가 우호적이었고 이번 파문만 없었다면 협상이 잘 진행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잘 되어가던 밥상이 국정원의 쓸데없는 개입으로 들어 엎어진 꼴이 된 것.

한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이 훈련기를 꼭 수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러한 보도에 대해 진보신당 심재옥 대변인은 “방위사업청이나 국방부도 아닌 국정원이 왜 그런 강박관념을 갖는단 말이냐”고 꼬집었다.

충성경쟁 때문?

이번 사건이 불거진 배경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정부기관 간의 지나친 충성 경쟁과 함께 여기서 비롯된 각 기관간의 소통부재 그리고 국정원 자체의 내부적 요인 등 크게 3가지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우선, 최근 이면 계약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주 계약 성사 건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가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있는 ‘치적 쌓기’에 혈안이 돼있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해석이다.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대통령 독대 보고를 부활시킬 때부터 이 같은 일은 예고된 사태였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에 무기를 팔고 싶어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강박관념’이 대통령에게 독대보고를 하던 국정원의 과잉충성을 자극했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과 함께 노무현 정부 때 폐지됐던 국정원장 등 정보기관장들의 대통령 독대보고를 부활시켰는데,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원세훈 국정원장이 독대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 직접 챙겨왔던 관련 사안의 ‘고급’ 정보를 경쟁자들보다 먼저 보고하기 위해 국방부 관할 영역까지 개입했다는 추측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 지목되는 각 기관간의 소통부재도 근본적으로는 충성경쟁에서 비롯된 문제로 볼 수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지난 8월 북한의 서해 도발 지시를 감청해 청와대와 군에 알렸다”고 해명, 북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떠넘겼다.

이어서 제대로 맞아서 피해를 입힌 게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 연평도 대응사격 북측 탄착지점 사진을 공개해 군을 망신준 것도 국정원이었다. 연평도 피격을 계기로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의 정보공유 및 협력관계가 엉망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인데, 국정원과 국방부는 드러난 문제점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관계 개선에 나서기보다 오히려 그렇지 않아도 공조가 되지 않던 관계가 더욱 멀어졌다.

결국 국가기관간 공조체계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림으로 인해 국방부는 협조를 구해야 할 국정원에 이번 방위산업 협력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국정원은 또 나름대로 정보획득을 위해 독자적으로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이 정관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무능, 무능, 무능…

▲ 굳은 표정의 원세훈 국정원장
앞서 지적한 두 가지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해석은, 원세훈 체제의 국정원이 매우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인니 특사단 건에 앞서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 리비아 사건 등 원 원장 취임 후 국정원의 무능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지난해 7월 발생한 리비아 사건은 국정원의 한 직원이 북한과 리비아의 방위산업 협력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다가 리비아 보안당국에 적발, 한국과 리비아 간의 외교 관계가 국교 단절이라는 최악의 상황 직전까지 간 상황이 있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리비아에 상주하다시피하면서 겨우겨우 사태를 수습했던 이 사건의 배경에는 리비아 첩보활동을 벌인 국정원 직원이 현지 활동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아랍어 구사능력이 없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조직의 태생이 대북 정보활동 강화를 위해 창설된 중앙정보부에 기원했다는 점을 감안해 해외 정보능력에서의 미흡한 부분을 이해해 줄 수 있기 않겠느냐는 주장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정원은 대북 첩보에서도 무능함을 보여왔다.

단적으로 지난해 대한민국을 전쟁공포로 몰아넣었던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사전 징후 포착은 물론이고 사후 해석에서도 혼선을 빚어 대북 정보능력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정관계 여기저기서 불거져나오고 있다.

이러한 무능의 원인에 더해 일각에서는 국정원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조직기능 저하를 꼽는 목소리도 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김성호 전 원장 시절 중책을 맡았던 사람을 중심으로 70여명에 대해 좌천인사를 단행하고 TK(대구·경북) 인사를 중용하면서 내부갈등이 첨예화됐다는 것이다. 인사 갈등에 휩싸인 국정원이 정보에 집중하지 않고 서로 헐뜯기에 열중해 결국 이번 사건이 터졌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은 23일 “지금 국정원은 쇄신은커녕 지금 정상화를 해야 될 지경에 와있다”며, “내부의 얘기에 의하면 정상화 시키는데도 몇 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한다. 그럴 정도로 지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국정원이 과거청산을 한다고 대대적인 숙정이 벌어지면서 대북기능이 약화되고 무력화 된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다”며, “이 정부 와서 그런 국정원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전 정부 인사도 다 교체한다고 하면서 너무 인사가 무원칙하게 자의적으로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져서 국정원 자체가 지금 기능이 상실되고 마비상태에 와있다고 오래전에 들었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지금은 원장의 책임 문제가 아니라 국정원을 빨리 하루 속히 정상화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몇 사람의 문책 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국가 중추기능의 마비, 상실을 회복시키고 정상화시키는 그런 문제라는 것을 같이 인식해야한다”고 주장했다.



靑 ‘모르쇠’, 경찰 ‘두둔’, 외교부 ‘감싸기’
정치권, 여야 한목소리로 “원세훈 원장 경질 필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보기관이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불법적인 정보 수집활동을 했다는데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국격(國格)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국가 간의 외교관계에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렇듯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매우 크지만 경찰과 외교부 등 국가기관이 국정원을 제 식구 감싸듯 두둔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현오 “처벌해도 실익이…”

조현오 경찰청장은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 침입자가 국가정보원 직원이라는 의혹을 제기되자 21일 “국정원이 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며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혀졌을 경우라도 처벌해도 실익이 없지 않나”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조 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차명 계좌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했던 것과 연결해 “정치검찰이 조현오 청장 본인의 망언에 대해 눈감아 주는 것이 눈물겹게 고마워 국정원에 의한 절도사건도 눈감아 준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외교통상부는 22일 기자들에게 “이번 사안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것이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고려를 해달라”며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이번 사안이 지나치게 확대돼 외교 관계와 국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지만 이 역시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해결에 나서야 할 외교부가 오히려 사건을 덮으려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난처한 청와대

청와대는 아예 언급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소행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고,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한 비판과 사퇴 요구에 대해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인데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어떤 발언도 할 것이 없다”고만 했을 뿐, 청와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이유에는 이번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고 싶은 속내가 담겨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청와대가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원 국정원장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묻는 순간 우리 정부가 인도네시아 특사단 호텔에 침입한 괴한이 국정원 직원임을 공식 인정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이를 인정할 경우, 국가정보기관의 허술한 정보수집활동으로 국민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것은 물론 이번 사태로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이다.

정치권 “원세훈 경질해야”

‘국정원에 대한 문책성 인사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청와대에서 흘러나오자, 야권은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민주당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국익을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국정원장 경질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국정원장을 경질하면 부적절한 첩보활동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문책할 수 없다는데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청와대가 모른 척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느냐”며 “대통령은 즉시 국정원장을 경질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세훈 국정원장 대신 김남수 국정원 3차장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은 “이 정권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측근 감싸기를 위해 엉뚱한 희생양을 내세우는 대리 경질로 사건을 무마해왔다”고 꼬집기도 했다.

국정원의 쇄신 필요성에 대한 요구 목소리는 여당에서도 가장 강하게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23일 “최근 국정원 사태를 보면서 이 나라 최고 정보기관으로서의 국가정보원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며 “국정원 쇄신의 출발은 국정원장의 경질”이라고 말했다.

서병수 최고위원도 “우리나라 내부에서 어설픈 활동을 벌이다가 국익을 훼손하고 나라를 망신시킨 이런 행태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세훈 원장에 대한 경질론이 힘을 얻을 경우 정부가 모른 척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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