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넘나드는 北, 대남 유화전술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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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넘나드는 北, 대남 유화전술 속내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1.01.06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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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꺾은 정책 선회? 진짜 전쟁 준비 위한 연막전술?

[매일일보=이한듬 기자] 진짜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은 전쟁 가능성을 입에 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이 대응 태세를 가지도록 준비할 기회를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이 ‘전쟁불사’를 외치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될 때에도 국내 경제가 큰 동요를 보이지 않은 이유이다.

북한이 최근 연이은 대남 유화전술을 펼치고 있어 그 진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일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조선반도에 조성된 전쟁의 위험을 가시고 평화를 수호하여야 한다”며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사업을 통한 관계 개선 의지를 공언했다.

이어 4일에는 “적대국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더니, 5일에는 또 다시 “사상과 제도의 차이가 결코 불화와 적대의 원인이 될 수 없다”며 우리정부에 무조건적인 남북회담 개최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모두 우리 정부에 떠넘기며 ‘전쟁불사’를 언급,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조성하던 북한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꿔 평화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대남 유화전술을 두고 대북전문가들은 ‘평화카드’ 이면에 또 다른 복심이 숨어있을 것으로 판단하면서 그 진의를 해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역시 신중한 태도로 현재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전쟁불사” 입장 일단 접고 “대화 통한 남북관계 개선” 주장
한미일 3국의 강경정책 공조에 일단 살기위해 자존심 꺾었다?

대북 전문가들 “북측 권부 핵심의 복심은 ‘잇속 챙기기’에 있는 듯”
“무역봉쇄 해제 통한 경제난 타개로 김정은 후계체제 안정화 목적”

지난해 말 까지만 해도 북한은 연평도 포격사건의 책임을 묻는 우리정부에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전쟁불사라는 최악의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중국이 6자회담을 거론하며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등 연이은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대화에 임할 수 없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북한 역시 모든 책임은 남한정부에 있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그러나 신묘년 새해가 밝자마자 북한은 갑자기 기존의 태도를 뒤바꾸며 대화를 통한 남북협상과 평화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 지난달 우리 군의 연평도 해상사격 훈련에 위협을 가하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 화면/ 사진=뉴시스
갑작스러운 ‘민족정신’  

북한은 1일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고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사업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신년사설을 통해 “북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며 “남조선 당국은 내외의 한결같은 규탄 배격을 받는 반통일 동족 대결정책을 철회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북한은 “민족 공동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북남 사이의 대화와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면서 “각계 각층의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를 보장하며 협력사업을 장려해 북남관계 개선과 통일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북남 공동선언은 온 겨레가 변함없이 높이 들고 나가야 할 자주통일의 기치며 민족 번영의 이정표”라며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 민족이 북남공동선언과 그 기본정신인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을 조국통일운동의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철저히 구현해나가는 여기에 우리 민족의 밝은 전도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년사설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 입장과 의지는 변함이 없다”며 “앞으로도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 밑에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며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4일에도 노동신문을 통해 “적대국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적대국들이 반북한 정책을 중단하고 북한의 자주권과 존엄성을 존중한다면 그들과 관계 정상화를 실현하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관계개선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특히 “모든 국가가 신념과 체제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들 간 협력과 친선은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차이를 초월해야 한다”며 “북한은 독립성과 국제적인 정당성의 원칙에서 이웃 국가들과 우호 협력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5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을 통해 “북남 사이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제기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한 좋은 전례가 있고 이미 채택한 훌륭한 원칙과 선언들이 있다”며 “실권과 책임을 가진 당국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성명서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 민족이 분열된 것은 외세 때문이며 오늘 북남사이의 첨예한 대결도 외세의 전쟁책동의 산물”이라며 “사상과 제도의 차이가 결코 불화와 적대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현실로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남조선당국을 포함해 정당, 단체들과의 폭넓은 대화와 협상을 가질 것을 정중히 제의한다”며 “우리는 최악에 이른 북남관계를 풀기 위해 당국이든 민간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이든 보수이든 남조선 당국을 포함한 정당, 단체들과 적극 대화하고 협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와 손잡고 나가려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만날 용의가 있다”며 “조성된 사태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소속, 정견, 신앙의 차이와 과거를 불문하고 민족대단합의 견지에서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음을 밝힌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대화와 협상, 접촉에서 긴장완화와 평화, 화해와 단합, 협력사업을 포함해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한 모든 문제들을 협의·해결해 나갈 것”과 “북남관계 개선의 분위기조성을 위해 비방·중상을 중지하며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제의했다. 

▲ 김정일 김정은 부자(오른쪽부터) / 사진=뉴시스
평화 제스처, 그 진의는?  

이처럼 북한이 연이어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표명하는 것을 두고 대북전문가들은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외견상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를 함과 동시에 뒤로는 잇속을 챙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

특히 북한의 대남유화 전술은 김정은 체제에 큰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눈길을 끈다. 북한은 지난해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이 후계구도를 공식화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3대 세습에 대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한반도 전면전 발발의 위기론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평화’의 의지를 드러내며 대화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모션을 취하게 되면, 북한 내부적으로도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어느정도 이미지 제고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북한은 남한 정부로부터 쌀, 비료 등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고, 여기에 금강산 관광 등 경제협력 사업이 활성화 된다면 경제적으로도 큰 잇속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9년 11월 말 화폐개혁과 뒤이어 단행한 시장폐쇄 조치 이후 극심한 경제난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무력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뒤따르고, 남한의 물자지원마저 끊기면서 경제난이 한층 심화되면서 김일성-김정은 권력에 대한 민심이반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일 대북 인터넷 라디오채널 <자유북한방송>이 함경북도 청진시의 통신원을 인용해 전한 최근 북한 내부의 상황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서 김일성에게 받은 각종 선물과 이름이 새겨진 시계도 암암리에 매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은 “김일성이 살아있던 90년대까지만 해도 이 같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국가가 10년 넘게 식량배급을 하지 않은데다 화폐개혁으로 장사밑천까지 잃은 주민들이 이제는 최상의 가보로 여기던 김일성의 선물도 돈이 된다면 서슴없이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절대권력에 대해 어떠한 불온행위도 용납되지 않는 북한 사회에서, 김일성의 이름이 새겨진 선물을 매매한다는 것은 현재 중앙권력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어느 정도까지 심화됐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때문에 흩어진 민심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상황인데, 만약 북한의 대남 유화전술이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민심이반 현상과 경제난이 탈출구를 찾는 것은 물론 권력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권력에 대한 신뢰는 결국 김정은 후계구도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낳는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좀더 전방위적인 경제 원조를 얻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대남 유화전술은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회담재개가 어려운 분위기에서 관계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정설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현재 한-미 군사동맹보다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한-미-일 군사동맹 구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한 달래기’에 나섰다는 관측 또한 설득력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6일 북한 사정에 밝은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을 인용, “북한이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한국 측에 일정부분 성의를 보일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는데, 이 같은 보도는 북한이 남한 달래기를 통해 다양한 잇속을 취하려한다는 여러 가지 관측을 뒷받침 한다.

▲ 사진=뉴시스
신중한 남한 정부 “언제 돌변할지 몰라”

우리 정부는 북한의 유화전술을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6자회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북한이 먼저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와 태도변화를 보이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

통일부는 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에 대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반전·평화, 반보수·반외세 투쟁을 선동, 남남갈등 조장을 지속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경계하면서도 “북한이 대화와 협력사업 적극 추진을 언급, 남북관계 개선 및 인도적 지원사업 추진 의도를 표출했다”고 어느 정도 긍정적인 부분을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 사설에서 “우리의 절대적인 존엄과 사회주의 제도, 우리의 하늘과 땅, 바다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자들을 추호도 용서치 않을 것이며 무적의 총대로 조국과 민족 앞에 지닌 역사적 사명을 기어이 수행할 것”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주목하며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북한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는 눈치다.

특히 “인민군대는 주체적인 전쟁 관점과 멸적의 투지를 안고 고도의 격동상태를 견지해야 한다”며 “인민군대의 정신은 백두의 공격 정신이며 정의의 대응 방식은 즉시적이고 무자비한 섬멸전”이라고 강조한 부분도 심상치않은 대목이다.

이와 관련 진보 성향의 정당은 북한의 대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으나, 보수 정당 쪽에서는 이를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특히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청와대가 남북이 마주 앉으려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 등에 대한 북한의 명확한 유감 표명이 필요하며 이 원칙에서 절대로 후퇴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 바로 엊그제”라고 강조하면서 “원칙과 자존심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이어 “6자회담 재개는 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무력도발 사건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북한의 무력공세와 평화공세의 양면치기에 또 한 번 놀아나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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