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수 빠진 한국, 실속챙긴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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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수 빠진 한국, 실속챙긴 북한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0.12.21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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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정부가 연평도 사격훈련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매일일보=이한듬 기자] 지난 20일 북한의 위협과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했던 우리 군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이 북한의 추가 도발 없이 마무리됐다.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4분까지 약 한시간 반 가량 실시된 이번 사격훈련에서 우리군은 연평부대에 배치된 K-9자주포와 105㎜ 견인포 등을 동원해 연평도 서남방 가로 40㎞에 세로 20㎞ 지역으로 지난달 23일 훈련 당시 실시하지 못했던 잔여탄을 발사했다.

앞서 북한은 우리 군의 이번 사격훈련을 “모험적인 제2의 연평도 포사격 도발로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한 괴뢰군부의 체면을 추겨세워보려는 새로 꾸려진 괴뢰군부 호전광들의 속내”라며 “포사격을 강행하는 경우 2차, 3차의 예상할 수 없는 자위적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정부도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을 통해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사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북한의 위협과 주변국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격 의지를 철회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러시아의 주재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안보리 회의까지 열리게 됐다.

이처럼 우리 정부가 자칫 전면전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사격훈련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국방 전문가들은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저지하기 위한 주권행사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번 일로 안보리 회의까지 개최되면서 일각에서는 NLL 지역이 전 세계에 분쟁지역으로 비춰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는데, 이 상황에서 해당 지역이 우리 영토임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하기위해서는 사격훈련 진행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간 북한은 NLL지역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UN에 의해 일방적으로 생겨난 경계선에 불과하다며 여러 번 무력화를 시도해왔다.

일례로 북한은 지난 1999년 1차 연평해전 직후 북방한계선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만든 ‘해상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서해 5도를 북한의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군으로서는 사격훈련을 반드시 실시했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에 북한의 협박이나 주변국의 만류에 사격훈련을 포기한다면 해당 지역이 우리 영토가 아닌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우리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군은 이번 사격훈련이 자국 영토에서 매년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설명하며 ‘주권’과 ‘자위권’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이번 해상사격훈련에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대북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경계태세가 높아진 상황에서 북한이 실제 대응타격을 감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한 북한이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단 복귀를 전격적으로 허용한 것과 관련해 6자회담 물꼬를 트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무리한 군사도발로 일을 그르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애초에 추가도발을 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흥미를 끈다.

전면전 확대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실제로 추가도발을 실시하기 보다는, 대응타격 가능성을 크게 부각시켜 한반도 전쟁 위기감과 NLL지역에 대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이 지역이 문제점이 많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북한의 속내라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우리 군의 사격 계획이 전해진 18일에는 당장이라도 대응 타격을 가할 것처럼 위기감을 극대화 시키더니, 정작 사격훈련이 진행되자 이러한 태도는 온데 간데 없이 그저 침묵만하다가 훈련이 끝난 직후에 “유치한 불장난에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 같은 태도변화와 북한이 우리 정부에 위협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IAEA 사찰단 복귀를 허용하는 등의 유화적인 외교전술을 함께 펼친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당초 목적이 NLL 지역의 분쟁화라는 관측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격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그저 ‘본전치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공식적인 요청을 뒤로하고 사격을 감행한 것은 두 국가에 대한 외교적인 손실로 간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 북한은 NLL 분쟁지역화라는 소기의 목적과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와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물론 북한은 애초에 잃을 것도 없었겠지만, 적어도 이번일을 통해 확실하게 얻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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