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영 칼럼> '부처님 오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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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영 칼럼> '부처님 오신 날'
  • 나정영 발행인 겸 사장
  • 승인 2010.05.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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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유명한 성철스님(1912~1993)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들에게 꼭 법당에 가서 3천배를 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올 것을 주문했다.

필자 역시 당대최고의 고승인 성철스님을 인터뷰하러 합천 ‘해인사’에 가면 예외 없이 절을 해야 했다. 성철스님을 만나기전에 절을 하기 위해 법당에 가면 근엄하게 생기신 보살님이 의자에 앉아서 기자들이 절하는 숫자를 일일이 마음속으로 카운트 하고 계셨다.

한번은 보살님이 숫자를 새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꾀도 나서 104를 크게 이야기하고 120을 작게 말하는 방법으로 숫자를 몇 개단 뛰어 넘었더니 귀신처럼 알아내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시죠!”라는 호통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말이 쉬워서 3천배지 일반인들이 하려면 반나절이상 소요된다. 거의 진을 다 빠진 상태에서 성철 스님방에 들어가야 했다.

첫 인터뷰때 “성철스님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3천배를 해야 만나 준다는거야?"하고 벨이 살짝 꼬여 스님방에 들어가자마자 따지듯이 물어본 적이 있다.

“왜 3천배를 시키시는 겁니까?”

성철스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걸죽한 입담으로 “흔히들 3천배를 하라고 하면 하면 나를 보기 위해 3천배를 하라는 줄로 아는 모양인데 그건 틀렸다”고 했다.

자신은 늘 기자들에게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가라.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 이익이 없다”라고 누누이 이야기를 해도 기자들은 듣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런 기회를 이용해 말을 듣지 않는 기자들을 “부처님께 3천배 절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성철스님은 “절을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원래 나를 위해서 절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기자들이 3천배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질문 할 것인지 생각도 하고 나는 처음오는 저 기자에게 무슨 좋은 말을 해줄까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미로 3천배를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성철스님은 구도자나 참선자가 지켜야할 수칙으로 다섯가지를 강조했다.  “잠 많이 자지 말라”, “말 많이 하지 말라”, “간식하지 말라”, “책 보지 말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책 보지 말라”는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스님들중에서 성철 스님처럼 책을 많이, 그리고 널리 읽은 분이 없을 듯 싶다. 이 부분은 많은 스님들이 인정을 하는 부분이다. 이런 성철 스님이 ‘책을 보지 말라고 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자신만 보겠다는 것인가?”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철 스님의 “책을 읽지 말라” 는 뜻의 진의는 “스스로 탐구해서 몸소 체험하는 일만이 참으로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뜻 이었다.

불교에서 부처님에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처님을 뛰어 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승(學僧)이 있고 다른 하나는 수행과 참선을 통해서 부처님 곁으로 가겠다는 선승(禪僧)이 있다.

얼마전 타계하신 법정스님이 대표적인 학승이시고 성철 스님은 선승이시다.

성철 스님이 ‘해인사’에 계실 때 많은 학승들이 “책을 보지 말라”는 이상한(?)스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성철스님을 찾아가 ‘선문답’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찾아간 학승들은 성철스님의 학문의 깊이 놀랐다고 한다.
성철 스님이 살아 계실 때는 선승과 학승의 싸움이 없었다.

성철 스님이 학문이나 수행의 깊이가 워낙 큰스님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불교계가 ‘봉은사 파동’등으로 인해 시끄럽다. 때문에 불교계의 큰스님이셨던 성철스님이 더 그리워지는지 모르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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