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돈뭉치 들고 대기하는 투기꾼, 기름 붓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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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돈뭉치 들고 대기하는 투기꾼, 기름 붓는 정부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4.03.13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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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이 동네 토허제 풀리기만 기다리는 분들 여럿 있어요. 투자자나 중개인이나 규제 해제라면 무조건 환영이지요."

서울 용산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 11일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지정 상황과 최근 분위기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귀띔했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 철폐를 통한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기치로 규제 자물쇠를 한꺼번에 풀어 주면서, 서울 시내에 얼마 안 남은 토허제 및 투기과열지구마저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옹호성 기사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때마침 전국을 뒤덮은 극심한 부동산 침체와 건설사 줄도산 사태는 규제 철폐 주장에 힘이 실리는 동력이 되고 있다. 압구정·청담·대치·용산·잠실 등 입지와 개발 이슈가 한데 몰린 서울 노른자 중 노른자 지역들이 묶여 있는 만큼, 과거에는 '투기꾼 막으려면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젠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위해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파고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범야권과 서민들의 거센 비판에도 투기 세력과 다주택자 진입장벽 철폐에 초점을 맞춘 정책 일변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쏟아낸 정책들은 다주택자·임대사업자 주담대 허용,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규제 지역 대거 해제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다. 

여기에 실거주 의무 폐지는 3년 유예로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뒀고, 최근에는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 발표에 이어 국민의힘 발의로 '안전진단'을 '재건축 진단'으로 바꿔 준공 후 30년이 지나면 사실상 재건축이 가능하게끔 하는 내용도 현실화 되고 있다. 

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와 절대농지 개발규제 완화, 군사보호구역 해제를 비롯해 각 지역 숙업 사업 추진 약속 등 장밋빛 선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지난 2년간 쏟아낸 개발 일변도 정책들과 앞으로 더 나올 정책들은 고금리와 부동산 하락 심리가 버티는 한 투자·투기 세력이 이득을 보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언젠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리가 떨어지고 부동산 시세가 치솟을 시점이 되면 웃고 울게 될 이들이 누구인지 짚어 봐야 한다.

실제로 기자는 취재 도중에 소위 '돈 좀 굴린다는 사람들'은 부동산 침체 국면에서 관련 규제 완화 일변도로 경기 부양책이 쏟아질 때나, 금리가 고점에서 더 오르지 않고 유지될 때, 서울 재건축·재개발 호재 매물 시세가 하락 후 보합할 때를 투자 타이밍으로 보고 움직인다는 말을 들었다. 수면 위에선 '눈치보기'로 잠잠한 듯이 하지만 물밑에선 '무릎 타이밍' 잡기에 몰두하는 투기 세력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숱하게 지적돼 온 난개발과 무분별한 국비 투입 후 처치 곤란으로 방치되는 유령 산단, 유령 마을 추가 양산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극소수 투기 세력이 불어 넣은 호가 거품을 실수요·실거주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선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토허제는 국내 자본이 절대적으로 몰린 서울에서도 강남, 그중에서도 최고 노른자위 땅을 향한 무분별한 투기와 난개발을 막기 위한 제도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 집값을 잡는 게 우리나라 집값을 잡는 첩경(捷徑)이자 전국 집값이 불필요하게 오르는 것을 막는 방파제로 보고 있다"고 했다.

주택(住宅)은 말 그대로 주거라는 목적성이 분명해야 하지만, 일부 세력에 의해 어느새 쏠쏠한 투자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내건 정부의 규제 철폐 일변도와 시장 가치와 사유재산 침해를 내세운 일각의 토허제 폐지 여론이 난무하고 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오 시장과 서울시가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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