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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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을 읽고
  • 김철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3.0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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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매일일보  |  1970년대 말, MIT 대학원생이었던 시절에 학계에 막 떠오르던 스타였던 ‘스탠리 피셔’라는 젊은 교수를 만나 조언을 구하러 찾아갔다가 그 교수가 860페이지짜리 책 ‘미국 화폐사’를 건네주면서 “이 책을 읽어 보게. 엄청나게 지루할 걸세. 그러나 이 책이 흥미롭게 생각된다면 화폐 경제학이 자네에게 맞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는 그 책에 빠져들었고 그 책을 통해 화폐 경제학뿐만 아니라 1930년대 대공항의 원인에 대해서도 깊은 흥미를 느꼈고 처음으로 화폐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됐다는 장본인이 바로 벤 버냉키다.

그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는 미국의 제14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202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역대 가장 성공적인 연준 의장으로 불린다. 대대적인 양적 완화를 통해 글로벌 금융 위기로 촉발된 대침체의 불길을 잠재운 소방수로 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 또한 연준의 수장이 된 이유도 학자로서 통화 정책 연구의 대가이자 대공황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쓴 647페이지의 벽돌로 비유하자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에 청와대의 역사를 낱낱이 서술하고, 그 이면까지 깊이 있게 분석한 내용으로 내공이 집약된 시대의 걸작이라고 볼 수 있다.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의 시작은 ‘연준’이라 흔히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me)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준(Fed)은 미국 중앙은행 시스템으로 조직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세계 금융경제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 달러 지폐의 발행이다. ​주요 기능은 통화 금융정책 결정 및 수행, 은행의 관리 감독 및 소비자 신용 서비스 보호,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유지, 미국 정부 및 금융기관과 외국기관에 대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이고 통화 정책 수단으로 국가의 통화 공급량을 조절하는 공개시장조작, 금융기관의 지급준비금 조정, 재할인율 조정 등이 활용되며, 증권 거래에서의 계약 이행 보증 등의 금융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수행한다.​연준의 경우 12개의 연방준비은행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방 재무부로부터 독립되어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는 주로 역사라는 렌즈를 통해서 오늘날의(그리고 미래의) 연준을 들여다본다. 이게 바로 그가 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며, 연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시켜온 수단과 전략,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한 연준의 통화 정책과 은행 감독 그리고 금융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대처는 오늘날에도 연준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손꼽히고 있다.​

​연준의 수단과 정책 체계, 그리고 의사소통 방식은 1951년에 재무부와 연준의 합의를 계기로 중앙은행이 거시경제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된 이후 급격히 달라져 ‘인플레이션의 움직임, 특히 인플레이션과 고용의 관계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는 점과 ‘균형 이자율이 장기간에 걸쳐 하락했다는 점’ 그리고 장기적 변화는 ‘금융 시스템의 불안이 큰 위험 요소로 대두되었다는 점’ 등의 폭넓은 경제적 변화가 어우러져 중앙은행이 자신의 목표와 한계를 보는 관점을 형성한 결과가 이 책의 일관된 주제다.

21세기의 통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의 상승과 하락’, ‘세계 금융 위기와 대침체’, ‘이륙에서 코로나 팬데믹까지’, 마지막으로 ‘앞으로 다가올 일’ 이렇게 4부로 구성했다.

폴 고갱이 그린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의 유명한 그림이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중앙은행에 던지는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했다. 팬데믹 위기에서의 놀라운 활약이 보여주듯이, 연방준비제도는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과 아서 번스 시대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연준은 정책 수단과 전략, 커뮤니케이션을 대폭 개조했다. 변화하는 정치적 기류를 헤쳐오며 정책의 독립성을 지켜냈고 그러면서도 행정부 및 의회와 협조하여 위기에 대응하고 다른 여러 국가적 우선순위를 뒷받침했다.노동 시장 강세의 폭넓고 지속적인 혜택을 연준의 체계와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준이 양대 의무의 나머지 하나인 물가 안정을 무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래서도 안 된다).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경제에 미치는 이익뿐만 아니라(예를 들면 시장 기능을 개선하고 장기적 계획을 촉진한다) 높은 수준의 고용이 계속 이어지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연준은 경제와 정책에 관한 도전 외에, 대중적 인지도가 증가한 상황과도 싸워야 한다. 최근의 금융위기와 경제 위기의 대처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음으로써 한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이 기관은 이제 전 국민이 주목하는 대상이 되었다.

정책 원칙은 한 가지 분명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인플레이션과 함께 실업률에 대한 수치 목표를 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통화 정책은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의 결정인자가 되지만, 실업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통화 정책 결정자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해두고 최소한 몇 년은 기다리며 목표가 달성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때 인플레이션을 지배하는 '자연' 인플레이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은 통화(그리고 재정) 정책결정자의 행동에 달린 변수다.

이와 달리 비록 통화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실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건강한 경제에서의 실업은 자연실업률에 수렴되는 경향이 있고, 이를 결정하는 요소는 대체로 통화 정책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 이런 요소로는 인구 구성, 노동 숙련도, 기업의 수요 및 전략(예컨대 자동화에 대한 유연성 등), 그리고 고용주와 근로자를 이어주는 노동 시장의 효율성을 들 수 있다. 벤 버냉키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연준의 과거를 쉽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미국의 통화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임 경제 대통령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며 21세기 통화 정책이 나아갈 방향까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자 했다.

흔히들 연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조정이라지만 금리를 동결 또는 인하하게 되면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기침할 때,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라는 말처럼 한국 경제는 미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고, 그런 미국 경제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조율하는 곳이 바로 연준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은 후 금융정책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며 또 연준이 어떤 고민 속에서 정책을 결정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통화정책 결정에 중요함은 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자율 변동, 환율변동, 글로벌 경제여건 등의 상황 이해에 큰 도움이 되어 보람을 느꼈다.

 

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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