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1886조' 또 역대최대...정부 엇박자 대출정책에 시장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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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1886조' 또 역대최대...정부 엇박자 대출정책에 시장 혼란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2.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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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대출에 신용사면까지...이자부담 경감 정책 쏟아져
"DSR 규제 해봤자"...고금리 장기화에 한계차주만 급증
지난해 4분기 전체 가계신용(빚)이 전분기보다 8조원 불어 또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2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붙어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4분기 전체 가계신용(빚)이 전분기보다 8조원 불어 또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2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붙어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가계빚이 눈덩이로 불어나는 중이다. 지난해 4분기 전체 가계 신용(빚)이 전 분기보다 8조원 불어 또 사상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높은 금리에도 주택담보대출이 15조원 이상 늘었고, 연말 카드 사용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고금리 장기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위험수준에 도달한 우리나라의 가계빚 규모에 연일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가계부채 비중은 세계 주요 34개국 가운데 1위다. 이런 가운데 더 이상 돈을 빌리지도 못하고 갚을 길도 막막한 한계 대출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금융 취약계층 증가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전반적인 경기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국은행의 경고다. 정부는 연일 가계대출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정책 대출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목표가 서로 상충되는 가계 이자부담 완화 정책과 총부채상환원리금(DSR) 규제 강화 정책 간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은이 20일 발표한 '2023년 4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86조4000억원으로, 기존 역대 기록이었던 작년 3분기(9월 말·1878조3000억원)보다 0.4%(8조원) 많았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부채'를 말한다. 가계신용은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2022년 4분기(-3조6000억원)와 작년 1분기(-14조4000억원) 잇따라 뒷걸음쳤지만, 2분기(+8조2000억원) 반등한 뒤 3분기(+17조원)를 거쳐 4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 늘어나는 추세다.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카드 대금)을 빼고 가계대출만 보면, 4분기 말 잔액이 1768조3000억원으로 3분기 말(1761조7000억원)보다 0.4%, 6조5000억원 증가했다. 역시 잔액이 종전 기록인 작년 3분기(1761조7000억원)를 넘어섰다. 특히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잔액 1064조3000억원)이 15조2000억원 급증하며 직전 분기에 이어 최대 잔액 기록을 또 경신했다. 증가 폭은 3분기(+17조3000억원)를 밑돌았지만 2분기(+14조1000억원)보다는 컸다.

서정석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작년 4분기 가계대출이 6조5000억원 늘었지만 증가 폭은 3분기 14조4000억원보다 줄었다"며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담보대출) 공급 속도 조절과 50년 만기 대출 상품 판매 제한 등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주택담보대출이 여전히 15조원 이상 늘어난 데 대해서는 "서울 입주 물량이 4분기에 몰렸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작년 연간 가계대출 증가 폭(+18조4000억원)은 전반적 주택 거래 부진 등의 영향으로 2022년(-7조원)을 제외하면 2003년 통계작성 이래 가장 작았다"고 덧붙였다. 신생아 특례대출과 관련해서는 "지난달 29일 시행된 뒤 현재까지 상황을 보자면, 대환(갈아타기) 용도가 대부분이라 특례보금자리론과 비교해 가계대출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작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긴 하다. 가계대출 억제를 올해 경제의 가장 큰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 금융당국은 DSR 예외 항목을 축소하고, 스트레스DSR 도입으로 대출한도를 낮춰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하기로 했다. 문제는 서민·실수요자를 위한 정책모기지는 지속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올해 DSR 규제 예외 대상인 수십조원 규모의 정책 대출이 풀릴 예정이라 대출 억제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대규모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견인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조만간 27조원 규모의 신생아 특례 대출이 출시된다. 이같은 특례 대출은 금리가 1%대인 데다가 DSR 규제에서도 빠지기 때문에 가계부채 관리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또 지난해 5월부터 금융권과 함께 가계 이자부담을 낮추겠다는 목표로 신용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갈아타기 서비스를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로 확대했다. 갈아타기 서비스로 일반 신규 주택담보대출에서도 최대 1.4%p까지 금리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대출자들을 위한 신용사면 정책도 대출수요를 자극할 거란 지적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소액연체자 최대 298만명을 대상으로 연체이력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지 않는 ‘신용 사면’을 내달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신용회복 지원조치는 2021년 9월 1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연체가 발생했으나 올해 5월31일까지 연체 금액을 전액 상환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이에 가계 이자부담 완화정책과 DSR 규제 강화정책 간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각종 이자부담 완화정책은 다시 대출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정부의 가계대출 증가 억제 목표 수준 달성이 서로 다른 정책의 충돌로 어려워질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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