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환경이라는 아름다운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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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환경이라는 아름다운 절망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3.12.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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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불과 닷새전까지 두꺼운 외투가 짐짝처럼 느껴질 만큼 날씨가 따뜻했다. 이후 사흘 동안 한겨울 장마가 이어지더니 지난 주말부터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엄습하고 있다.

지구가 아프다. 사람 체온이 1도만 올라도 해열제를 먹고 수액을 맞는데 거대한 지구 온도가 1.1도나 올랐다고 한다. 적어도 20년 전부터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최근 몇 년 새 평범한 사람들도 온난화와 이상 기후를 몸소 느낄 정도가 됐다.

기후 위기가 낳은 모든 비난의 화살은 산업계로 향하고 있다. 석탄발전 감축과 온실가스 배출 규제는 유엔(UN) 등 국제사회의 가장 큰 의제가 됐다. 우리나라도 2050 탄소중립을 기치로 내걸고 산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13일 폐막한 제28회 COP(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탈화석연료 전환'을 촉구하는 합의문이 채택됐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3% 감축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나왔다.

이는 비용 문제와 직결된다. 공장 가동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기량이 고정적인데 이를 생산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결국 기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보다 에너지 단가가 비싼 풍력·태양광 발전 설비를 대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치솟는 전기요금 부담은 기업과 소비자의 몫이 된다. 한전경영연구원의 '2050 탄소중립에 따른 전력시장 영향분석' 보고서를 보면 LNG 발전 유지 여부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려면 2030년에는 작년과 재작년의 전기요금보다 약 35%, 2040년 42%가량 전력 단가가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민생 안정'을 내걸고 민수용 전기요금 인상을 망설이는 반면 산업용 전기료는 계속 올리고 있다. 이미 작년부터 올해까지 산업용 전기료는 30% 넘게 올랐다.

대형 공장에 쓰이는 산업용 전기료는 국민적인 체감이 덜 하지만 시간차를 두고 완성품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대대적인 설비교체와 전기요금 인상은 매출 원가율(매출 대비 원가투입 비율) 급등을 불러오고 수익성이 떨어진 생산자는 도매가격을 올린다. 이는 중간자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가격 인상과 소비자 부담 증가 사례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본 기자가 출입하는 건설업계에선 최근 시공 원가 상승과 수익성 악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사를 발주한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이 급증했고 새 아파트 분양가는 하루가 멀게 치솟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비용이 왜 올랐는지, 분양가가 왜 뛰는지는 자잿값 상황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건물을 짓는데 가장 많이 들어가는 철근과 시멘트 가격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철강사들은 철강 생산용 전기로와 고로 가동을 위해 매분기 수천억원의 전기요금과 연료비를 지출한다. 여기에 탄소중립을 위한 설비교체와 기술 개발비용도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포스코에 따르면 기존 용광로를 수소 환원 제철용 유동환원로와 전기로로 교체하는 비용은 69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됐다.

시멘트를 생산하려면 유연탄 등 골재를 넣은 킬른(소성로)을 1500~2000도에 달하는 열에서 연중 24시간 내내 가동해야 한다. 전기료가 뛰면 시멘트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또 각종 환경 규제로 인한 친환경 설비 투자와 교체 비용도 수천억원 더 투입될 전망이다. 업계 1위 쌍용C&E는 2030년까지 환경설비에 8000억원을 쏟아부을 방침이다.

탈탄소와 친환경 전환은 분명 인류의 당면 과제다. 이를 왜 해야하는지 되물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은 산업화로 편리함을 가졌지만, 환경을 등한시했다. 그렇게 한 세기 동안 놓아버린 환경을 되찾아 오기 위한 투자 비용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아름다운 절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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