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현대차그룹, 전기차 상승세 탄 유럽서 주도권 잃을까 ‘속앓이’

EU, 핵심원자재법 초안 발표 후 ‘2탄’ 연내 발표 전망 전기차 대부분 수출모델…전문가 “현지 직접투자 불가피” 현대차그룹, 체코‧슬로바키아 공장 전기차 라인 확충 관측도

2023-03-19     김명현 기자

매일일보 = 김명현 기자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피해 최소화에 힘을 쏟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럽은 현대차그룹에 전기차 선진 시장이자 전략적 요충지다. 현대차그룹의 유럽 내 전기차 판매 호조와 ‘올해의 차’ 석권은 글로벌 시장으로 전기차 전선을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보호무역 흐름이 강화되면서 시장 주도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발표한 핵심원자재법의 내용과 향후 대응 전략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추후 세부 법안이 나와야 전략을 구체화할 수 있지만, 역내 밸류체인을 강화하는 글로벌 정세에 선제 대응 태세를 갖춘다는 취지다. 유럽 핵심원자재법의 핵심은 2030년까지 제3국 전략적 원자재 수입 비율을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핵심원자재법 초안에 이어 연내 ‘2탄’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자동차 기업들은 EU 집행위원회에 IRA 수준의 지원 방안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8월 IRA를 시행하면서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950만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초안은 일단 핵심 원자재와 재활용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추가 발표에서 역내 생산을 유인하는 지원 방안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아직 원산지 규정이 자세하지 않아 국산 전기차 타격 수치를 추정하긴 힘들지만 ‘추세’는 뻔한 거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선전 중인 현대차그룹으로선 기민한 대응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유럽 일부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현지에서 판매되는 주력 전기차는 국내에서 수출되는 전용 전기차들이다. 대표 수출 모델인 현대차 아이오닉5는 ‘2022 독일 올해의 차’, ‘2022 영국 올해의 차’에 선정됐으며 EV6 역시 ‘2022 유럽 올해의 차’, ‘2022 아일랜드 올해의 차’ 등 유럽 내 권위 있는 자동차 상을 휩쓸었다. 아이오닉5와 EV6는 각각 현대차와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다.

특히 유럽은 미국보다 현대차그룹의 수출 물량이 더 많은 지역이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판매량은 유럽 29만대, 미국 18만대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추후 EU가 미 IRA와 비슷한 조건을 내건다면 유럽서의 타격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지 직접 투자, 즉 현대차그룹의 현지 생산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현대차그룹이 유럽 전기차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현지 생산 강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 현대차는 체코공장에서 코나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기아는 2025년경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생산라인 전환 등을 통해 현지 전기차 생산 확대 시기를 앞당길 것으로 점쳤다.

전기차 가격 상승 전망도 고민거리다. 핵심원자재법 여파로 전기차 제조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관측돼서다. EU는 사실상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 낮추기를 본격화한 모습이다. EU는 핵심원자재로 희토류와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을 언급했다. EU는 희토류 98%, 리튬 97%를 중국산에 의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원자재 수입처 변경 과정에서 배터리 원료 가격 상승이 배터리 가격을 밀어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EU 집행위가 ‘영구자석 재활용’을 언급함에 따라 관련 대응도 점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구자석은 전기차 모터의 필수 부품으로 꼽힌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아직 유럽 핵심원자재법 세부사항이 나오지 않았지만 자국 우선주의라는 미국 IRA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며 ”정부는 국내 자동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세제혜택 등 지원을 강화하면서 불협화음이 생기는 독소조항에 대해 (유럽에) 강력히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