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록 ‘법적 하자’가 없을지라도

2020-10-25     최상임 시인
최상임

[최상임 시인] 여기 한 마을이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의 한 주택단지. 집이 재산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재테크의 수단이 되어 집을 사고파는 일에도 불법이 횡횡하고 정부는 때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그런 것 모두 관심 없이 그저 층간 소음 없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며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모여든 사람들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담장을 맞대고 살아가는 소박한 마을이다.

도시의 가장자리라서 더 이상 발전될 것 같지도 않고, 발전될 곳도 없어 딱히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지도 않는 백여 세대가 다닥다닥 모여 사는 곳. 근처에 어린이집·초등학교·중학교·도서관이 있는 덕에 마을 남쪽 끝자락에는 자연녹지지역이자 교육환경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포도밭이 3000여평 있었다.

지난 여름 갑자기 그 포도밭에 국내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H사의 정비공장을 짓는다고 파헤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포도밭은 사라지고 악취 풍기는 흙더미들이 드러났다. 물론 사유재산이니 무엇을 하든 관여할 바 못되지만 이미 수 십 년 동안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은 납득할 수가 없다.

자그마치 약 1500여평의 대규모 정비공장이 주택과 어떤 안전거리도 없이 들어선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공사가 시작될 때까지 어느 누구 하나 주민들에게 이러한 사실 공지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했다. 마을에 거대한 정비공장을 허가하면서 누구도 현장에 나와 주민에게 어떤 피해가 있을지 살피지도 않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을 수 있냐고 구청으로 달려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딱 한마디, “법적 하자 없이 허가했습니다”였다.

법을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그 ‘법적 하자’를 찾지 못했고 공사장의 소음과 진동, 악취와 먼지에 시달려야했다. 이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평생을 살아오신 노인들은 절망했다. 결국 노구를 이끌고 구청 앞에서 취소를 요구하는 농성을 했고 공사장 입구를 막고, 결사 반대를 외치며 거대한 트럭을 몸으로 막아서기도 했지만 구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대통령께서 이제 우리는 헌법 10조 시대를 살아야한다고 TV연설을 하던 날도 이 마을 주민들의 개인행복 추구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연 그 ‘법적 하자’만 없으면 행정 관청이 주민들에게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 묻고 또 물었지만 구청의 대답은 여전히 ‘법적 하자’가 없으며 지역 발전을 위한 허가였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다.

발전의 의미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자동차 정비공장이 가동되면 그곳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 물질과 거대한 에어컨의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올 열기와 소음으로 우리의 주거환경이 파괴될 것이니 정비공장의 허가를 취소해 줄 것을 요구할 방법도 딱히 없다. 그저 집이 흔들리고 담 너머에서 울리는 거대한 기계 소음을 견디기 힘들어 구청에 민원을 넣는 것 뿐, 그마저도 ‘담당직원이 없다’, ‘소음측정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등 끊임없는 실랑이가 오고 간 후에 담당공무원이 와서 소음이 법적 기준을 초과했다는 ‘법적 하자’를 확인하고 행정처분을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으로 바뀌는 것을 과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서 시작된 ‘지방자치제’가 새롭게 출발한지 25년, 주민들은 내 손으로 뽑은 자치단체장이 어떻게 하면 지역민이 더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가령 이러한 정비공장의 인·허가 요청이 들어왔을 때 비록 ‘법적 하자’가 없을지라도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는지 한번쯤은 살펴보고 고민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지역 발전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민원을 발생시키지 않고도 정비공장을 지을 땅은 우리 지역에 얼마든지 있다. 그런 차선책이 있는 기업의 입장보다는 사는 곳을 버리고는 갈 곳 없는 주민들의 입장을 더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선을 구해야한다’는 그 옛날 목민심서의 마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