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구걸 논란이 남긴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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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구걸 논란이 남긴 씁쓸함
  • 연성주 기자
  • 승인 2018.08.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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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연성주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만났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은 지난해 6월 취임이후 처음이다.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사령탑과 국내 최대기업 총수의 만남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제부총리가 실제 생산과 투자가 이뤄지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기업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핵심 경영진들도 김 부총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만남은 지난주 일부 언론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동을 걸면서 이른바 ‘구걸 논란’에 휩싸였다.

김 부총리가 이례적으로 개인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나 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다”며 ‘구걸 논란’ 을 강력 반박했다. 청와대도 뒤늦게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이날 면담은 알맹이가 빠진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그치고 말았다. 청와대의 ‘구걸 논란’에 두 사람은 속 깊은 대화를 나눌수 없었다. 모처럼 만남이 사진찍고 밥만 먹고 헤어진 꼴이 됐다. 김 부총리의 대기업 방문은 삼성이 다섯 번째인데 유독 삼성에 대해서만 청와대가 개입하고 나섰다. 정권 핵심부의 ‘반(反)삼성’ 정서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경제부총리가 기업인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또 정부가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요청하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도 대기업 투자를 독려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수시로 기업인들을 백악관에 초대하고 틈만 나면 전화를 한다.

모든 경제지표가 우리 경제상황이 위기라고 비상등을 깜빡거리고 있다. 설비투자는 18년만에 처음으로 4개월 연속으로 감소했으며 6월 산업생산은 0.7%나 뒷걸음질했다. 소비심리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으며 30만명을 웃돌던 취업자 증가폭은 20만명에도 못미치고 있다. 8월 기업경기 전망은 18개월만에 최저를 기록할 정도로 기업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경제를 지탱해왔던 수출도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인도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서 투자와 일자리를 당부한 것도 그만큼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닥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부총리가 현장을 찾아 기업의 기를 살려주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권유해야 한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도리어 그게 더 문제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요청에 청와대가 시비를 걸만큼 한가한지 묻고 싶다. 기업 소통행보를 구걸이라고 폄훼하면서 발목을 잡는 편향된 인식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지금은 ‘구걸 논란’ 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삼성이 8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80조원이라는 '통 큰' 투자로 정부에 화답했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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