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저임금 논쟁에 가려진 ‘노동의 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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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최저임금 논쟁에 가려진 ‘노동의 質’
  • 이종무 기자
  • 승인 2017.07.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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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이종무 기자] 지난 10일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심의하기 위한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가 또 다시 파행됐다. 

지난달 29일 열린 6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들은 올해 대비 54.6% 인상한 ‘1만원’을, 사용자위원들은 2.4% 오른 ‘6625원’을 최저임금으로 각각 제시했으나 8차 회의에서 사용자위원 측이 자신들이 주장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체 퇴장했기 때문이다.

본래 법정 심의 기한도 지난달 29일 6차 회의였다.

결론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가타부타’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최저임금 뒤에 가려진 ‘노동의 질(質)’이다.

“첫차 타고 출근하고 심야버스 타고 퇴근한다”는 A(33)씨는 방송 외주 제작사를 돌며 4년째 조연출로 일하고 있다. 극심한 근무 환경과 업무 스트레스에도 그가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입봉(메인프로듀서로 첫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때문이다. 올해 말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A씨는 또 다시 다른 외주 제작사에서 조연출로 일하며 입봉을 기다려야 한다.

사실 방송계의 과로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방송작가의 예는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발표한 ‘노동인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54시간이다. 월평균 급여는 170만원 가량으로 막내 작가의 경우 시급이 3880원에 불과하다. 4대 보험 직장 가입률은 2%에 불과했고 근로표준계약서도 거의 작성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 같은 노동 환경은 법의 ‘사각지대’가 잉태한 ‘고질(痼疾)’이었다. 현행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돼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어 매일 방송사에 출근하면서도 ‘노동자’로 취급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7중 추돌 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 운전사의 노동 환경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행 ‘여객 자동차 운수 사업법’은 사업용 차량 운전사들이 2시간 이상 운행 시 반드시 15분 이상 휴식을 취하고 운행 간격도 최소 8시간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고 기사 김 씨에게 이 규정은 무용지물이었다.

사고 버스 M5532번을 운영한 오산교통은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에 “버스 7대로 15~30분 간격으로 운행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허가 받았지만 실제 투입된 버스는 5대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이다. 하지만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근무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매년 최저임금 인상 폭을 두고 실랑이만 하는 사이 늘 이들이 처한 상황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사회적 안전망을 먼저 확충하지 못하면 이런 사례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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