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정비사업… 입주 난민 우려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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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 정비사업… 입주 난민 우려도 커진다
  • 이소현 기자
  • 승인 2023.03.16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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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고물가에 곳곳서 공사비 갈등 불거져
6700가구 개포 디에이치도 공기 물밑 협상
서울 양천구 아파트 '신목동 파라곤'에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아파트는 공사비 분담 문제로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해 입주를 막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합과 시공사가 어떻게든 각자의 사업비 부담을 줄이고자 신경전을 이어감에 따라 시장에서는 '입주 난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공사비 분담 문제로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한 아파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소현 기자  |  주택 호황기 집값 급등을 경험했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각종 개발 규제는 완화됐지만 시장 예상을 깬 금리 인상과 러·우 전쟁으로 인한 공사비 급등, 화물연대 파업 등 대내외적 문제로 연일 난관을 맞닥뜨렸다. 발주자와 도급자 관계인 조합과 시공사가 어떻게든 각자의 사업비 부담을 줄이고자 신경전을 이어감에 따라 시장에서는 '입주 난민'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개포주공1단지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조합에 보낸 공문을 통해 "현재 협의 중인 돌관공사(강행공사) 기준 입주예정일은 11월 30일이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6000여 가구 규모 매머드급 단지인 이곳은 당초 조합원 입주가 예정보다 두달 늦은 내년 1월초로 변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조합 일정에 맞춰 11월 초로 빠듯하게 전세 계약을 맺은 입주민들은 고충이 컸다.

입주 지연 관련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입주날짜는 애초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입주일이 밀리면 임대차 시장에 미치는 혼란이 크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은 지하4층~지상35층 74개동에 6702가구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조합원 물량은 이 가운데 5045가구에 달한다.

시공사업단은 일반공급 입주가 시작되는 2024년 1월로 공사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청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하며 물밑 협상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사업단 관계자는 공문 관련 "조합 선에서 확정될 문제다"고 답변했다.

공문대로 돌관공사(강행공사)가 진행될 경우 시공사 부담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돌관공사는 공기를 맞추고자 자재·장비·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돌관공사 관련 추가공사비 청구 소송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5월 입주를 앞둔 강남구 '대치동푸르지오써밋'은 시공사가 조합에 도급액 미수금과 공사비 증액분 670억원을 요구하며 대치 중이다. 서초구 '래미안원베엘리'는 고급화 설계를 반영한 추가 공사비 1560억원 증액을 두고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갈수록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은 빈번해지는 중이다.  

고금리·고물가가 건설업 갈등의 공통분모다.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월 118.30에 머물던 것이 올해 1월 150.87까지 27.53% 급등했다. 사업비 조달금리는 지난해 연 4~6%를 오갔지만 올해 들어서는 제2금융권 기준 연 10% 안팎을 오가는 중이다. 여기에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과 올해 건설노조 준법투쟁까지 더해지며 공사 부담이 커졌다. 

관리처분인가를 막 받아든 조합들은 시작부터 난관에 빠졌다. 저금리 시기에 맞춰 정비사업비를 수립했는데 최근 조달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향후 대주단을 구하지 못하면 사업비 이자를 조합이 직접 내야 한다. 장기간의 사업 지연과 부동산 침체로 부담이 커질 경우 금융위기 때처럼 현금청산을 택하는 조합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성이 예전보다 크게 줄면서 아예 마이너스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도 사업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분양가를 내리라고 하지만 차라리 분양을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최근 대우건설이 시공권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좋지 않다는 일면이다"며 "미디어에 보도되는 것보다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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