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일보 = 김원빈 기자 | “전통시장은 가까운 시간 안에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중기부 주요 협·단체 소통 워크숍에서 한 발언이다. 디지털 대전환 등 시류를 쫓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전통시장에 대한 냉정하고 예리한, ‘기업가’ 다운 통찰이었다.
최근 자본주의 세계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고도의 딥테크 산업을 적극 활용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 미·중 패권경쟁 격화 등 체제에 대한 도전에 맞서 견고한 대안을 신속하게 제시해야할 소요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현장에서 느낀 이 장관의 발언은 일견 타당하다. 이를테면, 점포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노상에서 붕어빵을 판매하는 상인에게 빅데이터를 활용한 물류망 구축을 바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발상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통시장의 특징적인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정책적 효율성 역시 저하될 수밖에 없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 장관의 발언이 주장이 아닌 선견(先見)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다만, 이러한 발언이 전통시장·소상공인의 살길을 함께 고민해야하는 주무부처의 책임자로서 적절했는지에 대한 여부에는 이견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장관의 발언에 관련해 적잖은 충격과 실망감을 느꼈다”고 소회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냉철하다. 경쟁에서 승리한 강자는 생존하고, 패배한 약자는 도태된다. 한편으로 이러한 체제적 대제는 약육강식의 야만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 문명이 야만의 세계와 구분되는 이유는 도태될 것으로 자명히 예상되는 주체에도 기회의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경제적 효용성이 부족한 시장 주체라 할지라도, 그에 담긴 내재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타고난 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비단 상품을 거래하는 자본의 장(場)이 아니다. 상품을 건네는 상인과 장소에는 시장을 찾는 모든 이들의 수십 년의 시간이 담겨있다. 한국의 전통시장에서 오가는 상품과 재화는 그 일체를 승화한 하나의 경제적 수단일 뿐이다.
중기부는 “전통시장을 진흥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면서 “특유의 파편화된 특성으로 상인들의 일관된 의견을 취합하는 데 어려움이 크며, 유효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기에 주무부처의 책임자는 더욱 가시밭길로 들어서야 할 의무가 있다. 민주주의 체제의 임명직은 자신이 소관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의 민의를 경청하고 부여된 행정 권한을 통해 이를 정책으로 표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의 발언이 포기와 체념의 심정이 아닌 약자의 재도약을 위한 냉엄한 분석의 일환이었기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