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요새 대폿집에서는 이런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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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요새 대폿집에서는 이런 대화한다
  • 김경렬 기자
  • 승인 2023.02.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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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매일일보 금융증권부 기자.
김경렬 매일일보 금융증권부 기자.

[매일일보 김경렬 기자] 엊그제 친구들과 삼겹살 집에서 소주 한 잔 했다. 배를 고기와 술로 채워놓고도 마음은 허하다. 누가 퇴직했다, 짤렸다, 인사이동 했다 등 듣기 싫은 이야기를 서로 늘어놔서다. 불편한 인사의 기준은 이날도 찾지 못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나름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LG디스플레이에 다니는 한 친구는 다른 계열사로 전환 배치된다고 한다. 이동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LG화학, LG CNS 등인데 불안해서 택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파주에 꾸려놓은 신혼집을 빼기도 싫다고 했다. 침몰선에 탔던 것 같다고 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이 원재료 비용이 높았던 통에 그럴줄 알았단다.

LG에 다니는 형의 이야기는 기막힌다. 팀장으로 진급했지만 실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일반 책임으로 내려왔다. 자기보다 연차가 낮은 다른 팀장 밑에서 일한다고 한다. 눈치보고 쪽팔릴 것만 생각하면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리냐고 한다.

롯데하이마트를 다니던 친구도 거들었다. 본사의 한 부서에 근무했던 친구는 지금 영업점에 있다고 한다. 본부에 전문 인력들이 오면서 자연히 밀렸다고 한다. 친구는 영업점 말단 직원으로 좌천된 한 임원에 비하면 본인 처지는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두산중공업 친구가 말을 보탰다. 친구는 과장으로 진급하기 위해 설계업무를 관뒀다. 회사에서 영업부서로 이동하면 진급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단다. 진급 후 월급은 높아졌다. 친구가 입사 당시 당당히 밝혔던 “중동의 전등을 밝히겠다”는 꿈은 사장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은행 직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제조업 친구들에 비할 바 아니다. 실적 성장을 고려하면 그렇다. 다만 은행은 “내부냐 외부냐” 문제로 골치 아프다.

은행의 인사는 독특하다. 어떨 땐 라인이 통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다 같이 잘되기는 어려운 듯 경쟁에서 쳐진 누군가는 지점으로 밀려난다. 역대급 성과를 거둔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한 은행 직원은 “조용히 지내는 게 방법”이라고 한다. 행원은 요즘 같은 시대를 빗대서 ‘관치금융시대’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금융지주회장에 정부 인사가 몇자리를 꿰찼으니 틀린 말이라고 보기 어렵겠거니 했다. 산업은행의 부산이전 추진도 행원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를 염두한 듯 인사이동이 마무리됐다. 서울에 가정을 둔 산은 직원 누군가는 군말 없이 부산으로 가야한다. 집을 옮기든 출퇴근을 하든 회사의 선택은 절대적이다.

누가 가고 누가 올지 모른다고 했다. 정부인사가 통합에 나설지 미지수다. 그것은 감투를 쓴 사람이 입김을 불어넣어 결정하는 사안인 듯 보인다. 이 와중에 금융감독원은 거침없다. 지배구조를 들여다본다고 한다. 은행 윗선은 하나같이 떨고 있을 이유들이다. 내부의 누군가와 다투는 게 아니라서 싸우는 실체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은행, 공공재 맞다고 보인다. 시대의 기준이 이것저것 관여하더라도 내부 사람을 품는 건 다른 문제다. 통합은 늘 좋다. 공정하다고 생각한 잣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불공정한 칼일 수 있다. 올해는 희망퇴직 러시도 줄었단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오돌오돌 떠는 사람도 늘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누군가는 말했다.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사는 이야기 좀 다른 날도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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