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홀대’… 의료붕괴 악순환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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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홀대’… 의료붕괴 악순환 낳는다
  • 이용 기자
  • 승인 2023.02.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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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용 기자] 의료인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국내 대학병원부터 소아 의료 체계가 붕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세브란스병원의 소청과 지원자는 한 명도 없었으며, 부산대병원도 5년 만에 처음으로 전공의 지원자가 없었다. 해운대백병원도 같은 상황이며, 지난해에는 가천대길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소청과 지원률은 100%를 상회했다. 그러나 2020년 78.5%로 떨어졌고, 21년에는 37.3%로 급감했다.

대형 병원을 제외하면 소청과에서는 큰 수술을 잘 진행하지 않을뿐더러 법적 분쟁 수 또한 비교적 뒷순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해마다 지원율이 급감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언론은 소청과 기피의 주요 원인을 저출산으로 보도하고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어린이 수에 소청과는 비전이 없는 전공으로 인식되는 형편이다. 다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다. 의사들은 말한다. 실상은 소청과에 대한 낮은 평가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일부 몰지각한 환자 보호자로 인해 의사들이 소청과를 피하게 된 것이라고.

지원율 하락의 첫 번째 원인은 소청과의 ‘치료 난이도’가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해주려는 부모들의 마음이 의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높이게 된다. 성인은 본인이 아파도 병원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아이가 아프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의 경중과 관계없이, 이 과정에서 의료인과 보호자의 마찰이 생긴다.

약을 처방해준 지 하루 만에 약이 잘 안 듣는다며 따지는 부모, 치료 행위 도중 자녀를 아프게 했다며 의사를 나무라는 부모, 병원에서 자기 아이가 다른 병에 감염될 수 있다며 직원들에게 청소를 시키는 부모 등등. 이 외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는 부모들이 많다.

특히 지역 사회 개인 병원 의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맘카페’의 위력이다. 세종시 이비인후과 의사는 “서비스 과정에서 불만족한 점을 다소 과장하거나 허위사실까지 만들어 맘카페에 도배하는 부모들이 있다. 회원들이 합심해서 병원 불매 운동을 벌이기 때문에, 의료인 입장에서는 억울해도 일일이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소아 진료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낮은 것도 의료인의 가치를 하락시키는데 한몫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세부터 6세 미만까지는 본인부담금의 70%만 지불한다. 이는 소아에 대한 진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인데, 일부 그릇된 인식을 가진 부모는 “진료비가 저렴한 만큼 의료인의 노력도 저렴할 것”이라고 여긴다. 한 의사는 "어떤 보호자는 의사의 개인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 한밤중에 종종 아이가 아프다며 찾아와 '공짜 진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의학도들에겐 이미 ‘소청과는 무서운 곳’이라는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서울 S대 병원 의사는 “의학도들도 좋은 부모 밑에서 귀하게 자란 청년들이다. 아쉬울 게 없는 이들이 굳이 남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소청과를 선택할 리 만무하다. 필수 의료의 종말은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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