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소득 취약계층 ‘생계비 위기’ 종합적 대응 방안 서둘러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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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소득 취약계층 ‘생계비 위기’ 종합적 대응 방안 서둘러 마련을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승인 2022.12.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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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폴 볼커(Paul Volcker)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인플레이션은 잔인한, 어쩌면 가장 잔인한 세금이다.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 고정 수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부자보다 가난한 이들 바로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한 탓이다. 고소득 부유층은 인플레이션을 견딜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반면에 저소득 취약계층은 소득 대부분을 물가가 비싸진 생활필수품 지출에 쓸 수밖에 없으니 삶이 더 어렵고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저소득 취약계층은 일정기간 가계 소비지출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지수(Engel’s coefficient)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주거비 비중인 슈바베지수(Schwabe Index)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물가상승률을 제거한 실질임금도 고소득 부유층보다 저소득 취약층이 더 많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하루 생계비 마련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 저소득 취약층에 대한 정부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설득력을 얻는다. 고용노동부의 월간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의 명목임금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5.6%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는 실질임금이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고용노동부의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임시일용직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올해 2분기에 동기보다 2.8%, 3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3.1%나 각각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상용직 실질임금이 2분기에 동기보다 0.9%, 3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1.5% 줄어든 것에 견줘 감소 폭이 각각 3.1배, 2.1배나 큰 것이다. 

인플레 시대에 노동시장에서 불안정·저소득 취약계층인 임시일용직이 중·고소득자에 속하는 상용직에 비해 인플레이션 충격을 더 받고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지난 2020년 1분기 대비 올해 대기업(300인 이상)의 실질임금은 80만 원이나 오른 데 반해 중소기업(300인 미만)의 실질임금은 9만 원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또 300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시간당 평균 임금 1만4,899원을 받는 데 반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들은 3만2,699원을 받아 임금 격차도 확연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방증이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지난 1일 펴낸 ‘세계임금보고서’에서 국가마다 높은 인플레이션 장기화 지속으로 인해 저소득 취약계층의 ‘생계비 위기(The cost-of-living crisis)’ 시대가 도래했다고 경고했다. ILO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을 “명목임금 성장의 정체로 올해 내내 급등한 물가를 상쇄하지 못하고 실질임금이 크게 하락하면서, 저소득 노동자 가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계비 위기가 닥쳐온” 시대라고 규정하고 “인플레이션이 모든 가구에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큰 충격은 저소득 취약계층이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은 한국과 같은 선진 경제국일수록 노동자 실질임금을 대폭 떨어뜨린다. 특히, 노동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최저임금마저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난 3년간 물가상승률을 제거한 실질 기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번 ILO의‘세계임금보고서’에 의하면 2022년 상반기 전 세계의 실질임금 상승률이 전년 대비 -0.9%를 기록해 2021년 4.5%에 비해 무려 5.4%포인트나 크게 낮아졌다. 오랫동안 임금상승을 주도해온 중국을 제외하면 –1.4%로 무려 5.9%포인트나 더 낮았다. G20 국가만 보면 선진국이 -2.2%였고 신흥개도국은 0.8%였다. 북미지역은 -3.2%, EU는 -2.5%를 기록했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1.3%에 그쳤다. 지난 20년간 실질임금은 그래도 평균 2% 남짓 올랐다. 세계 금융위기로 모든 경제가 어려웠던 2008년과 2009년에도 실질임금은 1% 정도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빈사 상태에 빠졌던 지난 몇 년 사이에도 정부의 대대적인 임금 관련 지원 덕에 일을 적게 하고도 노동 소득은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실질임금의 하락은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아닐 수 없다.

 ILO는 코로나19 팬데믹의 2년간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일수록 일자리를 잃고 노동시장에서 이미 탈락했거나 소득이 급감한 데 반해 고임금·안정된 노동자는 고용을 견고하게 유지했다는 ‘구성의 효과’를 고려한다면 인플레이션 시대에 글로벌 실질임금과 구매력은 통계로 드러난 숫자보다 훨씬 더 악화했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통화정책을 지속하더라도 저소득층의 생계비 압력을 완화하는 재정정책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라고 권고하면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최저임금의 적절한 인상, 단체협약을 포함한 사회적 대화를 통한 임금 조정, 저소득층에 에너지 바우처(voucher) 지급 등을 제안했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생계비 위기’는 내년에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 기간 고물가가 이어지는 데다가 경기후퇴가 본격화되면서 명목임금 상승도 많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을 통해 충분한 완충 역할을 해줘야만 한다. 정부는 지난 12월 21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2023년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발표하면서 취약계층 생계비 부담 경감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교통, 통신, 교육 등 서민 생계비 부담을 경감하고, 취약계층의 에너지, 먹거리, 생필품 등 핵심 생계비 지원을 강화하며, 임차인 주거 부담 완화 및 전세사고에 따른 피해 지원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저소득 취약계층이 ‘생계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더 두텁고 더 촘촘한 종합적 대응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여 인플레이션에 상대적으로 더 가혹을 당하는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 삶의 질을 보장해 주길 바란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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