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혁신’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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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혁신’의 조건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2.11.23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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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민주 기자] 얼마 전 한 중소기업의 A대표와 인터뷰를 하며 나눈 대화가 마음속 상흔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으레 인터뷰 첫머리에 묻는 업체 소개 요청에 그 대표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기자님, 혁신이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혁신을 이루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대표가 말한 혁신의 조건은 ‘세계최초’가 되는 것이었다. 뻔한 말 같으면서도 그 속내가 궁금해졌다. 인터뷰가 무르익어갈 무렵, 대표가 내내 혁신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강조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강충경 생물공학과 박사가 펴낸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란 책에 따르면, 한국은 핀란드보다 훨씬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1990년 3조3000억원, 2000년 13조8000억운, 2016년엔 69조원 등 매년 증액 투자를 해오고 있다. 특허출원 또한 활발하다. 국내총생산과 인구를 감안한 특허 생산성은 세계 1위에 달한다. 투자 현황과 특허출원 성과만을 따져보았을 땐 한국이 세계 원천 기술과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단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대표와의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그가 이끌고 있는 기업은 생명공학기업으로, 세계 최초의 신기술을 개발했다.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소규모 업체가 독자적 역량을 기반으로 이뤄낸 ‘기적’과도 같은 성과다.

하지만 정작 모국에선 이 기술을 알아주지 않는다. 관공서,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허가가 8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너무 세계 최초’라 서란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돌아오는 건 미국, 유럽, 일본 등 글로벌 데이터를 가져오란 대답뿐이다.

반대로 해외에선 A대표의 기술을 갖고 오고 싶어 안달이다. 2019년엔 핀란드에서 A대표의 논문을 보고 연락을 취해왔다. 그는 핀란드에 날아가 억눌려왔던 이 혁신 기술에 대한 비전을 토해내듯 발표했고, 인정받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석박들이 A대표와 한국의 기술력에 찬사를 보냈단 후문이다.

‘선두’는 많은 책임을 등에 업고 외풍을 견뎌내야 하는 위치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한 발 뒤로 물러난다면,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강충경 박사의 책엔 핀란드 혁신의 3가지 특징이 서술돼있다. ‘실험적일 것, 위험을 감수할 것, 심패를 감수할 것’. 국내엔 보수적 제도에 가로 막혀 세계를 놀래킬 만한 기술을 꽃을 피우지 못한 유망주가 넘쳐난다. 한국의 인재와 기술을 지켜내기 위해선 국내 기관에서 먼저 이들을 인정해주고, 날개를 달아줄 제도들이 우선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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