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믿을 수 없는 스토킹처벌법,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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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믿을 수 없는 스토킹처벌법, 이대로 괜찮을까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2.09.21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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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스토킹에 시달리던 역무원이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토킹 처벌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피의자 전씨는 지난해 10월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직장 동료인 피해자를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고소된 뒤 직위해제 됐다. 이후 스토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고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피해자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늘어나는 스토킹 범죄와 이로 인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을 제정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법 시행 후 스토킹 범죄 피해 신고 수는 대폭 증가했지만, 여러 문제점으로 범죄 대응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 불벌죄’로 규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반의사 불벌죄란 사건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이런 경우는 약자인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추후 보복이 두려워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전씨를 형법상 살인 혐의로 구속했으나, 보강수사 과정에서 계획범죄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특가법상 보복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했다. 전씨는 흉기와 일회용 위생모를 미리 준비하고 범행에 앞서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인 메트로넷에 접속해 피해자의 옛 주거지와 현 근무지를 알아냈다. 이달 4일부턴 피해자의 이전 주거지 주변을 네 차례 찾았다.

자신을 스토킹으로 신고해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 친구를 보복 살해한 김병찬의 경우도 비슷하다. 피해자는 김 씨를 스토킹 범죄로 네 차례 신고한 후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일명 ‘세 모녀 살인 사건’의 김태현의 살인 범죄도 ‘스토킹’에서 시작됐다. 김 씨는 피해자 집을 찾아가 흉기로 피해자와 피해자의 여동생, 어머니를 살해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토킹 피해자가 신고해도 구속 수사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스토킹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112신고, 고소 등을 통해 재신고한 건수는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총 7772건이다. 이 중 구속수사를 한 건수는 211건으로 전체의 2.7%에 그쳤다.

‘신당역 역무원 살해사건’의 피의자 전주환도 구속영장이 지난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에 따라 피해자 보호 대책이 급선무라는 주장도 나온다.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스토킹 등 범죄는 대부분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로 피해자들이 신고 후 두려움을 더 느낄 수 있어서다.

‘신당역 역무원 살해사건’ 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반의사 불벌죄 즉각 폐지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고, 경찰도 스토킹 긴급응급조치 판단조사표를 개선해 다음 달부터 전국에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국회 통과를 기다리던 스토킹 관련 법안이 산적했던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보완책 마련에 나선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결국 이번에도 우리 사회는 또 막지 못했다. 스토킹 범죄나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또한 개인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들은 쉽게 대응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 국회 뿐 아니라 우리들 또한 스토킹을 범죄로써 심각하게 생각하는 의식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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