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정치 아닌 정책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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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정치 아닌 정책돼야
  • 이소현 기자
  • 승인 2022.09.13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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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소현 기자] "정부의 보도자료를 인쇄해 들고 다니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정책 실현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2024년 총선 때까지 우리를 이용하는구나, 열에 아홉은 다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1기 신도시 취재를 하는 동안 분당·일산의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내내 지속된 선거 국면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활성화는 '표심'을 잡기 위한 '핵심 공약'으로 떠올랐으나, 지난 8.16 대책 발표에는 단 두 줄의 문장만이 제시됐다.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을 2024년 착수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한 재정비용역을 하반기 발주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용적률 완화에 이주 대책까지 수립한 10만 가구를 공급 계획을 기대하던 주민들은, 새 정부의 임기 내 '첫 삽'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문'을 받아 든 셈이 됐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활성화에 시일이 소요되리라는 전망은 처음부터 나왔다. 29만가구 규모가 한 번에 재건축 연한을 넘긴 노후 아파트로 편성되는 만큼, 지자체와의 합의를 포함한 각종 계획 추진에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1기 신도시 과제를 "중장기 과제"로 언급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선 공약집에 '10만 가구 공급'으로 실린 공약도 취임 이후 발표한 110대 국정 과제에서는 '공급 기반 마련' 등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수정됐다. 

문제는 정부의 행보다. 당국자들은 선거철 여론이 휩쓸릴 때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마스터플랜을 통해 종합발전을 구상하겠다" 또는 "공약에 따라 조속히 추진하겠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당선 이후에는 막상 기대에 못 미치는 언급 수준의 발표를 내놓았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소통 실수' 논란을 넘어 '공약 퇴행' 비판까지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태를 무마하려는 발언들이 수 차례 반복되며, 부메랑처럼 자신의 한 말로 비판받는 상황이 온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자체와 직접 대화에 나서며 수습에 나섰으나, 한 번 흔들린 여론에 진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지자체 별로 주도권 이양부터 시범 단지 선정까지 각기 다른 요구를 하고 나서는 중이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1기 신도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규제 완화 등을 통한 시장 정상화부터 민간주도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까지 대대적인 변화를 정부는 약속했다. 지난 정권에서 물려받은 '부동산 거품'이라는 가볍지 않은 짐도 지고 있다.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정부에게 1기 신도시 논란이 정부의 허점을 드러내는 '첫 사건'이 될지 단순한 임기 초기의 '소통 미스'가 될지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렸다. 시장 안정에는 정부의 일관된 신호가 필수적이다. 선거철마다 달라지는 정치 게임보다는 현재를 반면교사 삼아 신뢰감 있는 정책을 제시하려는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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