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암호화된 보험약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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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암호화된 보험약관의 미래
  • 배나은 기자
  • 승인 2013.09.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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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개호, 굴신, 캐스트료, 주시야.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개호의 경우 장해로 인해 혼자서 활동이 어려운 사람을 곁에서 돌보는 것을, 굴신은 굽히고 펴는 동작을 의미한다. 캐스트료는 석고붕대를 하는데 드는 비용을, 주시야는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눈만을 움직여서 볼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맥락상 대강의 의미를 추정해 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 단어들이 보험 지급액 산정의 근거가 되는 보험 약관에 적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해당 단어의 명백한 뜻이 무엇이냐에 따라 보험금을 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본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암호 풀이를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생명보험 및 질병·상해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을 내놨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약관 앞부분에 배치하고 어려운 보험 용어를 순화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정말 보험약관이 누구에게나 쉽고 친절한 문서로 거듭나게 될까?

업계 관계자들은 솔직한 심정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명 조금씩 나아지는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상품과 용어가 쏟아져 나오는 업계와 상품의 특성상 약관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문서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자체가 용어 순화에 큰 의지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 해석이 다소 모호해야 보험사에 유리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 감독 당국의 용어 순화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여전히 보험사가 작성한 문서들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난해한 상태로 남아 있다.

금융 영역은 대표적인 정보 불평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영역이다. 단순히 어려운 단어에 각주를 달거나 괄호로 설명을 써넣는 수준의 개선이 아닌,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확한 약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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