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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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 죄가 아니다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2.08.0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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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김명현 기자] 우리나라는 택배 천국이다. 밤에 주문한 물품도 익일 아침이면 현관 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나라다. 코로나19 여파로 깊어진 비대면 구매 선호가 ‘편리함’이란 날개를 달았다. 소비자들의 택배 의존도가 급속도로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배경이다.

필자 역시 깊어진 택배 의존도 만큼, 택배기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누적돼 왔었다. 이들의 근무 여건과 처우 등에 관한 문제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밤낮없이 안전배송, 총알배송을 하느라 심신의 피로도가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택배를 이용하는 대다수 소비자도 이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최근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소비자에게 무거운 생수를 주문하지 말라는 배송기사의 발언, 택배기사로부터 물품을 함께 옮겨야 한다는 문자를 받은 경험 등이 공유됐다.

필자는 해당 글을 보고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다. 얼마 전 직접 겪은 일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귀중한 택배가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하루가 지나도 감감무소식에 CCTV를 돌려보니 배송기사가 가져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그 기사는 반품 건인 줄 알고 가져갔다고 한다. 언제 돌려줄 수 있냐 물으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라 올라가기 힘들다며 근처 가게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는 택배기사의 직업의식을 의심케 하는 말이었다. 한 명의 소비자로서 해당 업체에 불만 접수를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이기 때문에 과도한 시정조치를 받기 직전까지 갔던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나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접수 진행을 그만뒀다.

물론 이 일화를 일반화할 수 없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안다. 비단 개인의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업무 환경 등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생수를 주문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 물품을 시키는 일은 소비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송기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이고 지는’ 건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행위이지, 이를 악용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좌우명 :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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