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세마저 포기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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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세마저 포기하는 시대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2.07.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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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나광국 건설사회부 기자

[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페르소나(Persona)’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다. 또 철학용어로는 이성과 의지를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가리키며, 현대적인 의미로는 ‘가면을 쓴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말은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 결국 삶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선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개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모습, 즉 ‘페르소나’를 취하게 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의 다른 인격적 측면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고, 페르소나를 본성(本性)으로 착각해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며 집단화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도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물론 철학적, 심리학적으로 정의하는 페르소나와는 다르지만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면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 사회와 시장에 의해 쓰게 된 가면이다. 예를 들어 누군간 다주택자, 투기꾼으로 불리고 누구는 내 집 있는 사람, 집주인과 임차인, 무주택자 등으로 불린다.

이렇듯 시장에 의해 쓰게 된 가면은 요즘 사회에선 통성명처럼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주제가 됐다. 어느 지역에 자가로 사는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집값은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이제 스스럼없이 묻는 사회가 됐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이전 정부와 코로나가 겹친 2020년을 기점으로 더 심화됐다. 이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족이 생겨났고 대다수의 서민들은 서울에 그렇지 못한다면 수도권에라도 자신의 집을 사기위해 발버둥을 쳤고, 또 불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2년 전까지만 해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내 집 마련을 위해 경주에 나섰던 2030세대 중심의 서민들이 이제 자가가 아닌 전세마저 포기하는 상황에 처했다. 직전 정부가 주거환경 안정을 위해 내세운 각종 규제 영향으로 주택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뚜렷해지기도 했고 최근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등 금리 인상 영향으로 이자 부담이 커졌다.

실제로 올해 들어 서울아파트 매매는 급감한 반면 월세가 낀 임대차 거래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살펴본 결과, 올해 상반기(1~6월) 서울에서 월세가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이달 17일까지 4만208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4만건을 넘은 것은 올해가 역대 처음이다.

서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낀 계약이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35.8%에서 올해 39.9%로 치솟으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보증금이 월세의 12∼240개월치인 준월세(21.3%)와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를 초과하는 준전세(17.1%), 보증금이 월세의 12개월치 이하인 월세(1.5%)의 비중도 모두 같은 기간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전세의 경우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반면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극심한 ‘거래 절벽’에 빠지며 역대급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 이는 대출 규제 지속과 금리 인상 압박에 따라 집값이 고점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주택의 유형엔 장담점이 존재하고 각자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전·월세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월세의 경우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 때문에 주거비 부담이 심하다. 현재 전세 매물은 오히려 쌓이고 있다. 그동안 전셋값이 급등했고 이를 부담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이어 오른 금리 때문에 대출 이자 부담이 월세 보다 높아 수요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반면 월세에 몰린 수요로 월세 가격은 오르고 있다.

결국 부동산 시장에서 집주인 혹은 자가 소유자라는 가면을 쓰고 싶었던 이들이 이제는 전세도 아닌 월세 가면을 찾아다니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내 집 마련의 꿈이 어려워졌단 소리다.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국제 경제와 연관된 변수는 정부 입장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순 없다. 상황에 따라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는 것은 어쩌면 경제적 합리주의로 볼 수 있지만 정부가 말하는 주거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정부는 이달 21일 종부세 개편 등을 예고했다. 이미 집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주거비 부담이 커진 요즘 전·월세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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