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판기 시범사업 승인…업계 갈등으로 정식 도입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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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판기 시범사업 승인…업계 갈등으로 정식 도입 '적신호'
  • 이용 기자
  • 승인 2022.06.2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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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자판기, 이르면 올해 말 시범사업 시작 예정
약사회‧편의점계 도입 반대…의료계, 찬반의견 나뉘어
제약업계 공식 입장 없어…"약사편으로 기울 수도 있어"
대한약사회 회원들이 약 자판기 저지 결의대회에서 화상판매기 도입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용 기자] 정부가 약국이 문을 닫았을 때 약사와 영상 통화 후 약을 제공받을 수 있는 ‘약 자판기(화상판매기)’ 운영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의 정식 도입은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간 갈등이 수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3일 약국가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의 규제특례 과제를 승인했다. 이번 승인으로 화상투약‧판매기 개발사인 '쓰리알코리아'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화상판매기는 야간과 공휴일 등 약국이 폐점한 시간에도 영상통화 시스템을 이용해 약사로부터 원격으로 복약지도를 받으면서 일반의약품을 살 수 있는 자판기다. 승인안에 따르면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감기약, 소화제 등 11개 효능품목군의 일반의약품만 판매할 수 있으며, 약국 앞에만 설치할 수 있다.

10년 가까이 논란이 지속됐던 약 자판기가 조건부 승인되자 의료·의약·제약·유통업계간 해묵은 갈등이 불거지며 정부도 정식 도입을 장담하기 어려운 입장이 됐다.

현재 약 자판기 도입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곳은 약국가다.

대한약사회는 이번주 초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에서 약 자판기가 논의되던 시점부터 바로 대규모 반대 시위에 나섰다. 약사회는 “단 하나의 약국에도 약 자판기가 시범 설치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어떠한 조건부 실증특례 사업에도 협조하지 않겠다"고 강경 대응하고 있다.

약사회는 기기 도입으로 ‘의약품 대면 판매 원칙 훼손’과 ‘의약품 오투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국민보건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의 입장은 찬반이 엇갈린다. 일부 의사는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확대로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까지 약 자판기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일부는 현재 편의점에서도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만큼, 현재 판매 기준만 유지된다면 국민들이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며 찬성하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20일 "화상투약기 실증 특례 통과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통업계는 기기 도입이 편의점 매출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편의점계는 예전부터 정부에 제기해 온 ‘안전상비약 판매 품목 확대’ 카드를 다시 꺼내들 전망이다.

현재 편의점은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3개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업계는 지사제·제산제·화상연고 등을 추가해 판매 가능 품목을 20개까지 늘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대한약사회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제약업계는 현재 약국가의 눈치를 보고 있어 공식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형편이다.

약 판매기가 도입되면 유통 파이프라인이 늘어나서 매출에는 이득이지만, 주요 영업 대상인 약사들의 반대 입장을 정면반박하기 어려워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원래 일반의약품 판매에 대한 제약사의 이윤은 크지 않지만, 어쨌든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며 “자판기는 모든 의약품의 투약 내용을 기록, 24시간 냉장 보관한다. 승인된 일반의약품도 오랜 기간 검증된 제품들이라 약사회가 주장하는 오남용‧부작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제약업계는 약국가에겐 ‘을’의 입장인 만큼, 향후 핵심 고객인 약사의 편을 드는 기업도 나올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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