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친환경은 불편할 수밖에 없나”…모두가 고민해야 할 시점
상태바
[기자수첩] “친환경은 불편할 수밖에 없나”…모두가 고민해야 할 시점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2.05.25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김민주 기자] 얼마 전 편의점에 들렀을 때, 무심코 집어든 음료를 도로 내려놓고 ‘무라벨’ 생수를 구매했다. 친환경 트렌드 속 군중심리에 휘말린 것일까, 화려한 인쇄 문구가 부착된 비닐 라벨을 보니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최근 친환경은 소비자에겐 따라하고 싶은 유행, 기업에겐 필수 사업 분야, 정부에겐 최대 국책과제가 됐다. 친환경을 넘어서 ‘필(必)환경’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미닝아웃 소비(구매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소비 행태)를 추구하는 MZ세대의 화력으로, 친환경 마케팅은 ‘먹히는 장사’가 됐다. 하이트진로의 올 1분기 실적은 ‘무라벨’이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력상품 ‘석수’ 페트의 무라벨 확대 적용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8% 늘었다.

친환경 마케팅의 확대와 함께, 무늬만 친환경인 ‘그린워싱’ 사례도 무분별하게 늘고 있다. 편의점에서 산 무라벨 생수 역시 과연 무라벨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음료 제조 업체들은 제조사‧용량‧영양정보 등 필수표시 항목을 라벨 없이 개별 페트병에 기입하기 어려워, 묶음 포장재에 일괄 표기하는 방식을 쓴다. 1~2인용 소용량 낱개 상품은 병목에 소형 라벨을 부착해 비닐 사용을 최소화한 ‘반쪽 무라벨’이다.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아직 괄목할 만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플라스틱‧비닐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시도는 분명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이 과도기 속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환경부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섣부른 친환경 표방의 대표적 예다. 해당 제도는 업계 안팎에서 뭇매를 맞고, 세부 시행안 미흡 등의 이유로 시행을 3주 앞둔 지난 20일 돌연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게 됐다. 사전 홍보 부족 및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준비 미흡, 가맹점주들의 반발 등이 원인이다. 정부와 관련 부처는 비현실적인 제도 추진으로 시장의 혼란 및 분란만 가중시켰단 지적을 면치 못했다.

‘종이빨대’도 마찬가지다. 환경부가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자 업계가 고안해낸 아이디어였다. 도입된 지 3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객들은 음료에 묻어나는 종이의 맛과 흐물거림을 불편해한다.

친환경의 불편함을 친숙함으로 바꾸는 것은 정부, 업계, 소비자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