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남양유업 사태 후 ‘갑을문화’ 청산 나섰다
상태바
유통업계, 남양유업 사태 후 ‘갑을문화’ 청산 나섰다
  • 권희진 기자
  • 승인 2013.08.18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권희진·김형석 기자] 남양유업사태로 야기된 ‘갑(甲)의 횡포’논란은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며 대기업의 일방적인 횡포로 인해 약자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유통기업들은 저마다 그간의 악습을 폐지하고 자사와 대리점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남양유업 사태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난 현재 상생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정책만 내놓고 실질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는 기업들도 여전히 있는 상황이다.

▲ 남양유업 피해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6월 1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결사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남양유업을 규탄했다. 이후 남양유업과 피해대리점협의회는 협의를 통해 상생을 위한 기본 틀 마련에 합의했다. 연합뉴스

남양사태 이후 식품·유통업계, 윤리경영ㆍ동반성장 강조
과도한 乙지키기로 선의의 기업까지 범죄기업 매도 우려

끝없는 ‘甲 횡포’…도미노 확산

남양유업 사태를 시작으로 이어진 갑의 횡포 논란은 배상면주가 대리점주 자살사건에 이어 CU 편의점주 자살, 아모레퍼시픽 가맹점주들의 피해 사례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등 을의 울분이 확산됐다.

피해 편의점주들의 경우 본사의 밀어내기와 같은 강매와 특정브랜드 상품 진열 방식에 따른 간섭 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토로하는 한편, 화장품 가맹점주들은 본사가 판촉물 비용을 가맹점에 전가한 것도 모자라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등 각종 불공정 행위에 시달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경제민주화를 역행하고 있는 ‘갑을 문화’의 실태는 지난 5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 73곳을 대상으로 평가한 ‘동반성장 성적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평가 대상 기업들 중 유통업체들의 동반성장 등급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 빈축을 샀다. 일례로 현대백화점, CJ오쇼핑, 현대홈쇼핑, 홈플러스 등은 최하위 등급인 ‘개선’ 등급을 받았으며, ‘우수’ 등급을 받은 유통사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홈플러스의 경우 2년 연속 ‘개선’ 등급을 받는 불명예를 안아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말뿐인 동반성장’, ‘무늬만 상생’인 꼴이라며 힐난했다.

남양사태를 계기로 추락한 유통업계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기업들은 잇따라 윤리경영 지침을 마련하는 등 ‘갑·을 관계’를 상생 관계로 개선시키기 위한 모색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통업계 ‘윤리경영· 상생제도’ 강화

우선 논란의 중심에 선 유업계는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근본 원인부터 뿌리 뽑기에 나섰다.

서울우유는 이미 지난 2006년 영업문화 개혁을 위한 5대 개혁과제를 선정한 뒤 밀어내기 근절을 명문화한 바 있다. 또 고객센터 책임자들의 자체 모임인 ‘성실조합’과의 정기적인 간담회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생을 위한 공감대를 이뤄나가는 노력도 함께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전체 1200여개 고객센터 중 10년 이상 운영 중인 센터가 430여곳에 달하고 20년 이상 장기 운영하는 센터도 1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년 전부터는 본사와 대리점이 ‘청렴이행각서’를 함께 작성해 영업사원과 대리점주 사이에 오가는 ‘떡값’ 관행도 폐지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매일유업은 올해 초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대리점주들과 본사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으며, 동서식품은 갑을 관계 형성이 무리한 매출 목표 설정에 있다고 판단, 매출 목표 설정 단계부터 대리점주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이건영 빙그레 대표이사는 남양사태 이후 사내 인트라넷에 글을 게시하며 직원들에게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특히 협력업체와 대리점에 대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비롯한 재판매와 가격 유지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한 일벌백계 방침을 새로 세웠다.

타 식품업계도 기존에 진행해온 윤리경영·상생 제도를 강화했다.

한국야쿠르트의 경우 야쿠르트 아줌마를 회사 성장의 동반자로 예우하고 예의를 지키기 위한 차원으로 ‘야쿠르트 아줌마’와 계약을 할 때 회사를 ‘을’로 표시해 오고 있다.

롯데푸드도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대리점주와 계약을 할 때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다른 단어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CJ제일제당은 대리점주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직통 게시판을 운영 중이며, 농심은 대리점 경영 시스템 장비 등을 지원하고 장기 계약한 대리점주의 경우 5년 단위로 포상금을 지원하는 한편 우수 특약점은 부부 동반으로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등 대리점과의 상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SPC그룹도 가맹점주와의 상생을 위해 지난해부터 SPC 가맹점주 자녀들에게 연간 10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복한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조그룹은 내부 직원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대리점주와의 간담회 주기를 월 2회로 확대시켰다.

주류업체 역시 기존의 ‘갑의 횡포’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시스템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소통 강화를 위해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중소기업 상담센터를 열었으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선물 안 받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오비맥주는 골목상권을 지키는 소상공인들과 지역의 전통주 제조업체 등을 지원하기 위한 상생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이 회사는 앞서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로부터 동반성장 모범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주류는 8월부터 주류도매협회에 쇼케이스 기금 지원을 진행할 계획이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편의점업계도 동반성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대리점주와의 상생방안으로 지난 7월 초 자율분쟁 해결센터에 대한 상세 운영안을 수립하고 운영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 또 같은 기간 총 140억원을 지원하는 ‘가맹점주 상생협력펀드’를 신설해 CU 가맹점주들이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최대 3.9%의 대출 금리(약정기간 1년)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이밖에도 회사는 ‘스태프 장학금 제도’를 통한 우수 인력 지원과 계약 절차상의 분쟁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해피 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지난 5월 우리은행과 공동으로 2000억 상생펀드 조성과 함께 경영주 소통 프로그램으로 2개월에 한번씩 진행하는 ‘경영주간담회’, 지난해 도입한 경영주가 자신의 영업 노하우를 제공하는 ‘점포 운영 자문위원’, ‘서비스홍보대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세븐일레븐도 지난 6월 참여연대로부터 불공정 거래로 인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이후 상생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우선 수익이 낮은 점주가 중도폐점을 원할 시 매출 위약금(로열티)를 면제해주는 ‘매출 위약금 면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수익배분율에 따라 분담하던 위탁점 월세 인상분을 100% 본사가 부담하고 화재 및 현금도난 보험료도 100% 본사가 부담하고 있다.

▲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 등이 생산한 우유를 진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반성장도 좋지만”…기대 반 우려 반

하지만 세븐일레븐의 경우 지난 5월 가맹점주와의 상생안으로 발표했던 우수점포 해외 견학과 휴가 시 인건비 지원 등과 같은 제도는 아직 실행되지 못하고 있고 점주 민원 해결과 중재 역할을 담당하는 ‘자율뷴쟁해결센터’도 발표 후 석 달이 지나가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코리아세븐은 지난 6월 발표했던 ‘수익성이 낮은 점포 500곳 폐점’에 대해서는 아직 그 성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한 편의점을 운영하는 대리점주는 “지난 5월 CU편의점주 자살 사건 이후 회사 측이 여러 가지 상생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체감으로 와 닿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갑을관계 개선을 위해 고혈을 짜내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양측의 진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도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법안들이 잇따라 논의되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이른바 프랜차이즈법으로 불리는 ‘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에는 가맹본부가 예상 매출을 부풀렸을 경우 처벌하지 못했지만, 이 개정안에 따라 가맹본부를 허위·과장광고 혐의로 형사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앞서 6월 임시국회에서도 갑을 논란과 불공정행위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등을 발의하는 등 입법 논의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공정거래법에 도입하는 법안과 가맹사업자에게 부당비용 강요를 금지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은 표준대리점계약서 사용을 권장하고 정보공개서 제공을 의무화한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과 표준가맹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입법은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갑을 관계를 대등하게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하고 있지만, 과잉 입법은 오히려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사태를 계기로 본사와 대리점 간의 불합리한 갑을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라지만 협력사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선량한 기업까지 범죄 기업으로 매도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힘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적절한 제재와 적법한 처벌을 받는 게 맞지만 일반적인 경영활동 조차 갑의 횡포로 몰아가는 등의 지나친 기업 옥죄기식의 마녀사냥은 자칫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자제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