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없는 곳에서 장갑도 안끼고 1급 발암물질 취급”
상태바
“창문 없는 곳에서 장갑도 안끼고 1급 발암물질 취급”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3.07.25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점] 책·잡지·신발 노동자들 독성 물질 무방비 노출
▲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노동환경연구소 임상혁 소장, 민주노총 이상진 부위원장이 인쇄·제화업체 작업장의 유독물질 실태와 대책마련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심상정의원실 제공>

[매일일보] 중소 인쇄·제화업체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세척제 등에 발암물질인 벤젠, 신경독성 물질로 알려진 톨루엔, 하반신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노말헥산 등이 다량 검출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성동구 시민단체, 지역 업체 실태조사
“노동자들, 사용 물질 무엇인지 이름도 몰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매일 읽는 책과 잡지 그리고 매일 신는 신발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대책을 촉구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심상정 의원은 “인쇄·제화 노동자들은 오늘 발표할 실태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제조가 금지되거나 유해인자 허용기준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최재천·홍영표 민주당 의원 및 민주노총, 건강한일터안전한성동만들기사업단과 함께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성동구 지역의 인쇄제화업종의 세척제 노출 실태와 작업환경 실태조사 및 건강증상 설문조사결과를 벌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51개 제품 중에서 벤젠이 37개 제품에서 검출되었으며, 톨루엔은 33개 제품에서, 노말헥산은 22개 제품에서 검출되었다. 제품별 독성물질 평균 검출율이 5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노동환경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이 문제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3월, 첫 번째 일본 인쇄업 담관암 산업재해 피해자가 나오면서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라며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그보다 더 유해한 물질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임 소장에 따르면 일본에서 세척제 성분으로 쓰다가 그 위험성 때문에 디클로로메탄으로 교체되었던 톨루엔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으며, 평균 함유량도 58%에 달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임상혁 소장은 “노동자들은 사용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고, 그에 따라 개인을 위한 보호구는 전혀 지급되지 않거나 잘못된 보호구가 지급되고 있었다”며, “가장 잘못된 점은 유해물질을 환기시키는 환기시설이 제대로 없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3개 사업장에서 환기시설 중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으며, 창문이나 팬 정도만 있는 사업장도 17곳(50~60%)에 불과했고, 나머지 30% 가량은 창문조차 없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유독성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장비인 호흡보호구 착용률 또한 8%에 그쳤고 장갑마저 58%의 노동자만이 착용,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가 34%나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인쇄제화노동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인쇄제화노동자도, 일본의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담관암을 포함한 직업성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2012년 일본 인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담관암’이 집단 발병한 사태처럼 국내에서도 언제 어디서 직업성 암이 다발적으로 발생할지 모를 일”이라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인쇄·제화업종 세척제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 시행 ▲안전한 산업용 세척제 가이드라인 마련 ▲인쇄·제화업종 종사자들의 담관암 및 직업성 암 발생현황 조사 ▲담관암 산업재해 인정과 보상조치 마련 ▲2급 발암물질인 디클로로메탄과 생식독성 물질인 1,2-디클로로프로판 사용 사업장 조사·공개 및 재해현황 조사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민주노총 이상진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며 “기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심상정 의원은 “인쇄·제화업은 상당수가 영세하고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산업안전이나 유해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어서 노동자들은 사각지대 속에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인쇄·제화 세척제 등 유독성 물질은 이미 가까운 일본에서 담관암 등 직업성 암을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며 “우리나라도 시급히 이 문제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2의 ‘삼성백혈병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요구는 반드시 관철되야 한다”며 “산업안전은 국민 복지의 상징인 만큼 박근혜정부는 산재 사망률 OECD 1위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발암물질과 독성물질 등을 사용하는 사업장의 안전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