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 부산면 용동마을 ‘위원량기념비’ 관련 한시 초고 찾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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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부산면 용동마을 ‘위원량기념비’ 관련 한시 초고 찾아내다
  • 김금옥 기자
  • 승인 2021.05.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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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_위원량기념비.(사진제공=장흥군)
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_위원량기념비.(사진제공=장흥군)

[매일일보 김금옥 기자]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장흥 암각문을 조사해 온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과 해동암각문연구회 홍순석 회장(강남대 명예교수)은 5월 25일 회은 위원량의 한시작품 1건을 증손댁에서 발굴했다.

홍교수는 지난 11월에 수리봉 위원량 ‘망곡서(望哭書)’ 암각문을 고증해서 학술적 가치를 제고한 바 있다. 이후 장흥문화원과 함께 위원량의 사적을 추적하면서 많은 자료를 발굴했으며, ‘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와 ‘위원량 기념비’ 암각문을 조사하여 고증하고 있다.

회은 위원량(魏元良/1882~1945)은 전남 장흥군 기동마을의 토반인 장흥위씨 가문에서 천석꾼의 아들로 출생한 인물이다. 행장이나 비문이 없어 자세한 생애를 정리할 수 없다. 족보의 단편적인 기록과 어렸을 적에 회은을 보았던 지금의 원로들 기억이 전부이다.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 근엄하고, 검소하였으며, 문중이나 마을에 자선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회은은 청년 29세 때 한일합병의 국치를 당하고 울분을 토로하며 수리봉 정상의 암벽에 ‘망곡서’ 한시 작품을 새겼다. 가산을 희사하여 인근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장흥위씨 가문의 대소사에 적극 희사했다.

부산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장흥위씨 3세 효열각을 건립한 사람도 회은 위원량이다. 그 같은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흥위씨 장천문중과 지역 유림에서는 ‘회은 위원량 중건묘각 표창비’와 ‘전참봉 위공원량 선행비’를 세웠다. 부산면 용동마을의 ‘위원량기념비’도 수로 공사비를 희사한 것에 대한 공적비이다.

1백년도 안된 기념비가 방치된 채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판독을 마쳤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有岩在洫 / 바위가 봇도랑에 막혀 있기에

攻治築磯 / 잘 다스려서 자갈돌을 쌓았으며

置流不滅 / 물길을 내어 마르지 않게 하였나니

厥功何傳 / 그 공적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위원량기념비’에 새긴 찬사(讚辭)를 보면 물길을 가로막은 바위는 깎아내고, 자갈돌을 잘 쌓아서 수로를 만들었으며, 물이 마르는 일이 없도록 하여 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위원량기념비(魏元良紀念碑)’ 암각문은 장흥읍 부산면 용동마을 길가 수로(水路)의 암벽에 있다. 별도로 조성한 비석 형태의 기념비를 산기슭 암벽을 파고 넣어 시멘트로 고정한 것으로, 해서체로 쓴 「魏元良紀念碑」 6자를 중앙에 종서로 새기고, 좌우에 작은 글씨로 4언 고시를 새겼다.

비석 형태의 기반암 총규모는 가로 45cm×세로 95cm이며, 글씨 하나의 크기는 10cm× 10cm이다.

부산면 기동마을에 거주하는 후손들에 의하면 회은 위원량이 사재(私財)를 희사하여 수로를 개설해서 농사에 도움을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조성 연대는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회은 위원량은 송암정에서 시문을 만년의 낙으로 여기고 일제강점기를 겪어낸 향사(鄕士)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홍교수에 의해 칠언절구 ‘망곡서’ 1편과 칠언율시 <송암정 松岩亭> 1편만 확인된 상태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회은의 증손댁에 소장된 조객록(弔客錄) 갈피에서 회은의 한시 초고가 발견된 것이다.

내용을 검토한 홍교수는 “이 자료는 용동마을의 수로 정비사업 때 지은 것으로, 기념비의 내용과 부합한다. 회은의 시문을 탐문하여 수습하고 있는데 우연히 이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7언으로 지은 이 작품을 번역해 보인다.

前人未碎後人碎 / 전대 사람들이 부수지 못한 것을 후대 사람들이 부수어

從此更無崩頹憂 / 이로부터 다시는 무너지는 근심이 없으리니

水道碍岩從碎後 / 물길을 가로막은 바위를 부순 뒤로는

坐聽前野太平歌 / 앉아서 앞 들판의 태평가를 들으리

受釘尖石當其理 / 뾰족한 돌이 정을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一碎從休百室優 / 한번 부서진 뒤로는 온집의 근심도 없어지리

홍교수는 이 자료를 본보에 제보하면서 “향후 회은의 시문집이 발견된다면 일제강점기 우국지사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시문이 많을 것이다”며 함께 언론사와의 협동으로 찾아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이에 장흥문화원은 장흥군(정종순 군수)과 함께 의향 장흥의 숨겨진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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