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왜 말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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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왜 말하지 않았을까?
  • 이선율 기자
  • 승인 2013.07.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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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학폭 신고센터 전국 확대 시행 1년에 엇갈리는 평가

▲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 전국확대시행 1년 평가 토론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상규의원실 제공>
[매일일보] 지난 6월로 전국 확대 시행 1년을 넘긴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2012년 신고건수가 전년대비 286배인 8만여건으로 늘어나고 특히 본인신고 비율이 대폭 증가하는 등 ‘신고로 해결 가능하다’는 분위기를 확산시킨 것은 분명한 성과이다.

반면 접수건 중 지원센터 상담 등 실제 사후처리로 이어진 비율이 10% 안팎에 그치고, 신고센터 이용자 중에 문제해결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70%에도 미치지 못한 점은 앞으로 신고센터 운영에 있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음을 시사한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학생 중 117신고센터 등 전문기관의 도움을 청하는 경우는 2%(고등학교 1.7%, 중학교 1.5%, 초등학교 1.9%)도 되지 않았으며, 상당수가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34.1%, 중 27.6%, 초 20.7%)

특히 동 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를 목격한 학생이 ‘모른 척 했다’는 경우도 31.3%에 달했는데, 이와 관련 피해자와 목격자를 막론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말하지 않는 이유’로 ‘말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17신고센터 전국 시행 1주년 토론회’에서 조영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 학생인권국장은 아이들이 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은 대부분 나서지 말 것을 주문 받는다”고 지적했다.

조영선 국장은 “선생님이 지시하지 않았는데 하는 행동은 대부분 제지받기 일쑤”라며, “심지어 교실이 시끄러워 수업이 안 될 때도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는 것은 교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관한다”고 설명했다.

조 국장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동료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었음에도 선생님에게 혼나지만 않으면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학교폭력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평소에 단 한 번도 학교생활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어떻게 학교폭력에서만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느냐”며, “일상 속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나서 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어 “신고의 의무만이 주어진 학생들은 폭력이 발생하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피해자든 방관자든 스스로 저항하거나 사태를 말리지 못한다. 자신의 역할은 그 상황을 인지한 즉시 단지 ‘신고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라며, “가해자 역시 피해자에게는 사과하지 않고 단지 꾸짖는 교사에게 잘못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보복’ 보다 ‘위신 추락’ 공포

그는 “학생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심각한 손상을 입기 때문”이라며 “신고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자타에게 공인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조 국장은 “학교에서 학교 구성원은 개인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두 ‘친구’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해 신고하는 것은 친구의 허물을 들추는 부끄러운 일이 되고 그 오명은 학년이 올라가도 왕따를 당하는 꼬리표가 된다”고 부연했다.

조영선 국장은 “117신고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을 처리해달라고 학교 밖에 신고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며, “학생들이 117을 선택할 때는 가족이나 학교에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라고 말했다.

조 국장은 “이렇듯 신고는 모든 폭력 상황에서 약자가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신고 후의 조처는 단호하기에 증거도 명백해야 하고 이에 대해 피해자도 모두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처리 절차 좀 더 교육적으로

그는 “특히 ‘경찰 아저씨 있으니까 조심해’ 혹은 ‘학교 폭력하면 생활기록부 기재돼서 인생 망쳐’라고 하면서 학생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강화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학교폭력에 대한 사법적 접근을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신고는 외부로 유도하고 학교 내에서 사법시스템을 강요하는 현재의 정책방향을 재검토해, 학교 안에서 일어난 학생간 폭력은 교육적으로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에서 처리 절차를 내부에 둔다면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처리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안으로 학교폭력의 생활기록부 기재 철회 및 처리 과정에 화해조정 절차 도입을 제안하면서 “학교밖 지원기구의 인력과 예산을 학교 내의 돌봄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전문상담사나 사회복지사 등의 인력배치로 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담 전문성 부족하고 실적 급급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 김재철 정책실장은 시행 1년을 넘긴 117신고센터 운영과 관련해 가장 아쉬운 점으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으면서 “117에 대한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이유는 신고전화를 받는 분이 어떤 분이냐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철 실장은 “전문지식이 부족하거나 피해자 입장에서 고려가 적은 분일 경우 불만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험담을 들어보면 집을 오가는 길목의 놀이터에서 금품갈취, 폭행 등을 당하고 있는 학생에게 ‘그 길로 다니지 마라’, ‘친구들과 여러 명이 함께 다녀라’는 등의 조언을 해준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조언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실장은 특히 “피해학생들은 보통 오래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어한다”며 “상담하시는 분들 중에 실적에 대한 평가에 ‘하루 전화건수 몇 건’으로 따지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보니까 상담시간이 짧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건수에만 집착한다는 지적도 있다”며, “117 상담 건수가 적으며 이전에 상담했던 학생/부모의 번호로 리콜을 해서 잠깐 얘기를 나누고 상담을 1건 한 것으로 기록하기도 하는데, 경찰 쪽에서 이렇게 하라고 시킨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심지어 114로 전화 걸려다 잘못 걸어 117로 전화하는 경우도 있어서 업무가 과중되어 건성으로 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과 오랫동안 상담을 해왔거나 재활을 돕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117 신고센터의 전문 상담사로 더 많이 충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 피해자보다 가해자 중심

또한 “학교 별 폭력대책위원회와 117이 연계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피해자 입장에는 그렇지 않다”며 “조언을 구하기 위해 117에 문의한 경우, 굳이 폭대위를 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무조건 폭대위로 가는 일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학교폭력 전화라도 학생의 나이, 해당 사건의 특수한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서 조치를 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재철 실장은 “피해자 입장에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경우임에도 폭대위로 연결되면, 가해 학부모와 감정싸움으로 번지거나, 학교 당국으로부터 미운 털이 박히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부분은 경찰이라는 조직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가해자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겪은 얘기를 하다가 돈을 빼앗겼다고 말하면 금품갈취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한다. 가해학생이 한 때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인생에 큰 오점이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가장 큰 문제는 학교와 교사”라며 “피해학생이나 피해학부모는 학교/교사를 ‘가해자와 한 팀’, ‘제 2의 가해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범죄가 일어났다’고 인식해야 하지만, 피해자가 보기에 학교/교사는 ‘귀찮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만약 학교폭력이 범죄라고 생각한다면 철저하게 피해자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하고, 벌도 주어야 한다”며,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만큼이나 담임교사를 원망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산지원도 가해자에 집중

그는 “현재 전국에 148개의 WEE센터(학교, 교육청, 지역사회가 연계해 학생들의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지원하는 다중통합지원 서비스망)가 있지만,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에게 WEE센터는 가해자들을 위한 시설”이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있으면서 폭행이 계속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WEE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온 가해자가 피해자를 원망하며 더 심한 보복폭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재활교육과 더불어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을 엄히 다루는 분위가 형성되지 않으면 어떤 외부 교육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숙형 가해자 학교가 확대되고 있지만 피해자 시설에 관심을 갖는 지역교육청은 없다”며, “피해자 치유 전용 예산을 편성해 시설 운영을 제안해 온 유일한 지역교육청이 경기교육청인데 예산이 2억여원에 불과한 반면, 이천에 건립중인 가해자 학교 한 곳의 시설비만 90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지난 7월 8일 국내 최초, 유일의 학교폭력 피해가족 종합치유시설 ‘해맑음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예산문제로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최소한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한곳씩은 이 같은 치유시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입장’ 정책은 없다

김재철 실장은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피해자 입장’의 정책이 없다는 점”이라며 “피해자를 보듬는 것이 우선되지 않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그 어떤 것도 학교폭력을 진정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지원청 스포츠리그 확대, 전국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종목 확대, 학생 오케스트라 운영 학교 확대 등 스킨십을 늘리고 협동하는 경험은 분명 효과가 있겠지만 이미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 고민이 포함된 정책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김 실장은 “가해자들을 잘 가르쳐서 더 이상 가해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 입시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자존감과 소통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피해자들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안으로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들’이 ‘학교폭력 현장 활동가’로서 활동할 것을 제안했다.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들을 재교육해 현장 활동가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 가족들이 지역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당당하게 복귀하도록 만드는 효과도 클 것이라는 구상이다.

김 실장은 “심각한 학교폭력의 고통을 겪고 많은 경험을 해본 피해 학부모들은 또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정으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위로 상담가, 학교폭력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알려줄 수 있는 절차/제도 상담가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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