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폭 수습에 뒷짐 진 스포츠계 ④ 한계 드러낸 구단·협회·문체부 진상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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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학폭 수습에 뒷짐 진 스포츠계 ④ 한계 드러낸 구단·협회·문체부 진상 조사
  • 한종훈 기자
  • 승인 2021.05.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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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의존’ 구단 조사 과거 폭력 사실 입증 어려워
협회 자체 조사도 없이 ‘구단·여론’ 눈치 보며 징계
작년 출범, 문체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 무용지물
고교 시절 학교 폭력 의혹이 제기된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투수 이영하. 사진= 연합뉴스.
고교 시절 학교 폭력 의혹이 제기된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투수 이영하. 사진= 연합뉴스

[매일일보 한종훈 기자] 스포츠계에서 학교 폭력 의혹이 제기되면 대부분 해당 구단은 역풍을 우려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가리겠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실제 구단 자체 조사로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고, 시간이 지나며 흐지부지 가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스포츠계 내 미온적 대응에 문제가 제기된다.

올해 프로야구는 한화, 두산, LG 소속 선수의 학교 폭력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지금까지 해당 구단이 발표한 조사 내용은 거의 일맥상통했다. 구단들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파악에 나섰으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에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구단들은 “법적인 절차가 마무리되면 징계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구단 조사만으로는 학교 폭력을 명확하게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와 만남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폭력 시기 해당 학교의 동문과 감독, 코치, 학부모 등의 증언도 듣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자신과 학교 등에 불이익이 갈 수도 있기에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울러 10년이 지난 일을 명확하게 기억해내는 것도 어렵고, 한쪽이 거짓말로 일관하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구단 자체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해서 가해 사실을 고백한다는 보장도 없다. 가해자로 지목되면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이를 감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의혹이 일어난 종목 단체의 안이한 대처도 문제다. 그동안 연맹이나 협회 차원에서 학교 폭력 징계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야구와 배구 등 각종 단체는 올해 학교 폭력 사건이 연이어 폭로되자 그제서야 드래프트 신청서 제출 제도 및 폭력 사실 발각 시 영구 제명 등의 징계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계 폭력 사태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 가깝다.

협회 차원에서 조사도 없이 여론 강도와 피해자 진술, 구단의 조사 내용 등에 의존한 징계도 문제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2월 학교 폭력 사실이 밝혀지며 소속팀 흥국생명으로부터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국가대표 자격을 무기한 박탈했다.

하지만 지난달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라는 시민단체는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 단체는 고발장을 통해 “오한남 회장은 쌍둥이 자매 학교 폭력 의혹의 진실 여부에 대한 국민과 팬들의 의혹을 신속히 해소시키려 노력하기보다 일부 언론 보도만을 근거로 자체 진상 조사도 없이 국가대표 박탈 조치를 내렸다”면서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보다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배구협회는 산하의 초·중·고·대학 연맹 등 아마추어를 관장하고 국가대표팀을 지원한다. 학교 폭력은 대한배구협회가 관장하는 초·중·고교 시절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진상 파악 및 재발 방지에 앞장서야 할 협회의 미온적 대처는 아쉽다. 오히려 성인이 활동하는 프로배구를 총괄하는 한국배구연맹 및 구단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학교 폭력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지난해 8월 문체부 주도하에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스포츠계로부터 독립적인 지위에서 스포츠계 인권 침해와 비리를 조사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상담, 법률지원 및 전문기관 연계, 인권침해·스포츠비리 실태조사 및 폭력 등 예방 교육 등을 수행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하지만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의 중심이 돼야 할 스포츠윤리센터는 인사 특혜시비 등 논란만 야기한 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숱한 악재 속 이숙진 이사장은 지난 3월 사임서를 내고 스포츠윤리센터를 떠났다.

문체부는 지난달 29일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에 이은정 전 경찰대 학장을 임명했다. 학교 폭력의 진상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기구는 수장 없이 1달 이상 세월을 보냈다.

한편 문체부는 학교 폭력이 불거진 뒤인 2월 24일 ‘학교운동부 폭력 근절 및 스포츠 인권 보호 체계 개선 방안’을 의결하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문체부는 폭력을 가한 선수의 선수 선발 및 대회 참가와 대학 입학을 제한하고, 성인이 된 선수의 과거 폭력 사건에도 제재를 가한다는 내용 등의 개선안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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