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폭 수습에 뒷짐 진 스포츠계 ③ 허위 폭로·소송전 번져… 2차 피해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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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학폭 수습에 뒷짐 진 스포츠계 ③ 허위 폭로·소송전 번져… 2차 피해 논란도
  • 한종훈 기자
  • 승인 2021.05.11 1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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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등 ‘대중 여론’ 앞세워 학폭 사실 알려
‘거짓·과장’ 폭로, 은퇴·정신적 충격까지 받아
사실 규명 소송에 폭력 본질 반성해야 비판도
박상하는 집단 폭행 누명은 벗었으나 허위 폭로 충격으로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진단까지 받았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박상하는 집단 폭행 누명은 벗었으나 허위 폭로 충격으로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진단까지 받았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매일일보 한종훈 기자] 과거 학교 폭력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랑의 매’로 인식하면서 ‘더 잘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각종 커뮤니티와 SNS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도덕성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계의 학교 폭력은 운동부라는 특성상 그들만의 공간에서 문화와 규범이 만들어진 만큼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위한 훈육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랑의 매’를 가정한 폭력이 개인적 괴롭힘으로까지 번지면서 이에 따른 반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덕성 시비가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다. 기성 세대를 지켜본 젊은 세대들의 도덕성에 대한 잣대가 높아졌고, 이는 스포츠계에도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학창시절 자신을 폭행했던 선배나 동료 등이 유명 스타로 성장한 것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을 수 있다.

인터넷은 학교 폭력 의혹을 알리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실제 학교 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알려졌다. 개인 또는 단체 간 메신저를 비롯해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가해자가 유명인일 경우 인터넷이라는 ‘대중 여론’을 빌리면 경제적·심리적 타격뿐 아니라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를 법적인 절차를 통한 것보다 빨리 받을 수도 있다.

지난 2월,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남자 배구선수 송명근에게 고등학교 시절 폭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송명근은 소속팀 OK금융그룹을 통해 학교 폭력 사실을 인정했고, 시즌 잔여 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송명근은 피해자를 접촉해 용서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명근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건이 알려진 이후 여러 차례 피해자와 그의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면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정밀진단과 치료 등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이어 송명근은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주고 용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과거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해준 피해자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피해자의 용서에 송명근은 OK금융그룹과 자유계약선수(FA) 계약도 맺을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한 각종 ‘미투’가 쉬워졌지만, 도를 넘는 ‘허위 폭로’는 선수 생활 은퇴는 물론 명예 훼손까지 불러온다. 지난 2월,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삼성화재 배구선수 박상하가 중학생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박상하와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혔으며, 아파트에 끌려가 14시간 동안 집단 폭행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상하 역시 구단을 통해 공개 사과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감금 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법률사무소를 통해 작성자를 형사 고소했다. 조사 결과 글쓴이는 박상하와 중학교 시절 전혀 모르는 사이였고, 박상하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한 사실도 없었다. 자신의 학교 폭력 피해를 이슈화하기 위해 박상하를 이용해 거짓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였다는 사실 확인서를 제출했고, 육성 녹음으로 박상하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박상하는 학교 폭력 누명은 벗었지만 허위 폭로로 인한 평생 지우기 힘든 상처가 남았다. 정신과 상담을 통해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진단을 받았고, 고향인 충북 제천에 있는 절을 다니며 치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선수 복귀의 길은 열렸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믿기 힘든 폭로도 나왔다. 축구 선수 기성용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측과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법무법인을 통해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축구부 생활을 하던 2000년 선배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성폭력을 가한 선수 중 한명이 기성용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기성용은 성폭력 의혹을 전면 부인했으며, 지난 3월 의혹 제기자를 상대로 형사와 민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학폭 가해자가 오히려 법의 힘을 빌리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나왔다.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는 자신들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를 ‘사실 확인’을 이유로 고소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두 선수는 자신들이 SNS에 올렸던 자필 사과문도 삭제했다.

이재영·다영 자매 측은 “폭로 내용엔 맞는 부분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며 반성한다”면서도 “하지 않은 일도 포함됐고, 이로 인한 피해가 크기 때문에 소송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재영·다영 자매는 과거 학교 폭력 사태로 인해 소속팀에서 무기한 출전 정지와 국가대표 영구 제명 등을 받으면서 한창 나이에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면서 선수 생활 위기를 맞았다. 아울러 광고 등 손해 배상을 청구당할 위기에 놓이자 사실 규명을 위해 나선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른 비난 여론이 거세다. 사실을 규명한다고 폭력의 사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잘못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송을 하더라도 과거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소 시효가 지났을 뿐 아니라 10년 전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 지루한 공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잘잘못을 떠나 앞으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시스템 확립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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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엄마 2021-05-11 15:45:09
한 기자님 예전에 창원에서 뵙던 서진 엄마입니다. 골프로 가셨다는 이야기들었는데 글로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시간 나실 때 학원 축구장에서도 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