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성생활 간섭말라…‘양심보고’ 교칙 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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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성생활 간섭말라…‘양심보고’ 교칙 위헌”
  • 최필성 기자
  • 승인 2013.07.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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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여자친구와 성관계 이유 생도 퇴학 무효 판결

▲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 화랑로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69기 생도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A씨는 청천벽력 같은 퇴학조치로 인해 올해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뉴시스>
[매일일보] 육군사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당한 육사 생도가 모교를 상대로 “퇴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최근 승소 판결을 받았다.

사관생도의 사적인 성생활에 대해 사관학교가 개입해 징벌을 내리는 것이 과도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낸 것인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육사 측이 제도개선을 해나갈지 아니면 고집스러운 법정싸움을 이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소위 임관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11월 말, 육사 생도 A씨는 소위 임관을 불과 한 학기도 남지 않은 시점에 청천벽력 같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지난 5월에는 병무청으로부터 ‘일반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도 받았다.

육사 측이 A씨에게 퇴학처분을 내린 사유는 네 가지였다. 주말 외박시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해 품위유지 의무를 저버린 점, 이를 자발적으로 실토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사유였다. 승인받지 않은 원룸 임대와 사복착용금지 규정 위반은 부수적인 사유였다.

육사 측은 A씨가 생도생활 예규상 남녀 간의 행동시 준수사항(금혼)에 나와있는 ‘도덕적 한계’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A씨가 여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고, 쌍방 동의하에 영외에서 성관계를 했는데도 도덕적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봤다.

A씨 퇴학 처분과 관련해 육사 자문기관인 교육운영위원회는 ‘3금 제도’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도덕적 한계 규정이 모호하다며 퇴학 처분을 반대했지만, 육사 측은 이런 심의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육사 측은 A씨가 교칙을 어기고도 이른바 ‘양심보고’라는 형식으로 이를 자수하지 않은 점까지 징계 사유로 삼았다.

육사 생도생활예규는 생도가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때 자발적으로 보고하고 스스로 벌칙을 정해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정하고 있다.

A씨의 경우 작년 11월 초 양심보고에서 사복착용금지 규정 위반 사실만 털어놨다. 나머지 사실은 이후 “이성과 원룸에 출입하는 사관생도가 있다”는 한 민간인의 제보와 A씨의 추가 양심보고를 통해 반강제로 드러났다.

결국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태도로 수차례 표창을 받고 중대장 생도까지 맡았던 A씨는 육사에서 쫓겨난 뒤 모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문준필 부장판사)는 “퇴학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을 내렸다.

14일 법원에 따르면 재판부는 “성의 개방 풍조는 막을 수 없는 사회 변화이고 이제는 그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가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제재의 대상으로 삼아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A씨의 성관계는 개인의 내밀한 자유 영역에 속할 뿐 성군기를 문란하게 하거나 사회의 건전한 풍속을 해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판시하면서 육사의 구시대적 교칙을 꼬집었다.

재판부는 특히 ‘양심보고’의 문제점에 대해 위헌 가능성을 지적했다.

“어쩔 수 없이 양심보고를 하면 내면적으로 구축된 인간의 양심이 왜곡·굴절되므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양심보고 불이행을 징계 사유로 삼을 경우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힌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징계 사유 가운데 사복착용금지 규정 위반만 인정된다. 따라서 퇴학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앞서 2008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른바 ‘3금 제도(금주·금연·금혼)’ 위반자에 대한 사관학교의 퇴교 조치를 인권 침해로 판단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당시 육군사관학교는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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