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1,500년 전 삼국 시대 금동신발 보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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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1,500년 전 삼국 시대 금동신발 보물 지정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1.04.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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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2건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도 함께 보물 지정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비롯해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등 총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 중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 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喪葬禮)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사진=문화재청 제공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사진=문화재청 제공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됐다.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되었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2014년 수습 현장 사진=문화재청 제공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2014년 수습 현장 사진=문화재청 제공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일본 출토 백제계 금동신발은 6세기 고분인 구마모토현(熊本縣)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 고분, 오사카시(大阪市) 이치스카(一須賀) 고분, 시가현(滋賀縣) 카모이나리야마(鴨稲荷山) 고분, 나라현(奈良縣) 후지노키(藤ノ木) 고분 등에서 출토된바 있다.

일본고분 출토 백제계 금동신발. 사진=문화재청 제공
일본고분 출토 백제계 금동신발. 사진=문화재청 제공

 보물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高敞 鳳德里 一號墳 出土 金銅飾履)’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자리한 4기의 대형 분구묘(墳丘墓, 분구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추어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透刻)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人面鳥身, 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雙鳥文), 괴수(怪獸, 공상의 동물),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백제 시대 고분에서 나온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다.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魚子文, 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되어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스파이크)을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威勢品)’으로 추정된다.

 보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것이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었으며,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 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국립나주문문화재연구소의 최근 과학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발의 주인은 40대 여성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사진=문화재청 제공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사진=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함께 지정된 보물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은 호남(湖南)을 대표하는 고찰(古刹) 백양사(白羊寺)에서 300년 넘게 전래된 불교문화재다. 1994년 9월 도난되었으나, 2006년 9월 지금의 제자리로 환수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복장유물)사진=문화재청 제공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복장유물)사진=문화재청 제공

본존 아미타불이 여러 제자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1775년(영조 51) 백양사 극락전 아미타불상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조성한 불화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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