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19 혁명(四一九革命) 61주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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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19 혁명(四一九革命) 61주년에 즈음하여
  • 김길수 기자
  • 승인 2021.04.16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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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보훈지청 보상과장 김용복
경기동부보훈지청 보상과장 김용복
경기동부보훈지청 보상과장 김용복

[매일일보] 올해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선언에서 1년이 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며 의료진을 포함한 전 국민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

백신접종 실시를 통한 올해 말 전 국민의 집단 면역 형성이 유일한 희망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여준 저력은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최근 OECD 발표에 의하면 주요 20개국 중 올해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 회복이 전망되는 국가는 한국 포함 7개국뿐이다.

이는 효율적인 방역조치를 통해 경기진폭을 최소화한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방역정책이 완벽해도 국민들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성공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방역지침 준수를 통해 코로나 종식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위기에 굴하지 않는 의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해 왔다.

우리는 그러한 위기극복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해마다 4월에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4·19의거이다.

4·19 혁명 또는 4월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한 자유당 정권의 개표조작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어 나타난 반독재투쟁이자 혁명이다.

마산의거 참여 후 실종된 학생 김주열이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떠오른 것을 부산일보가 보도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 국민적 저항과 군 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고,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되어 계신 4·19 민주혁명유공자는 총 864명(본인 473명, 유족 391명)이며, 서울특별시 강북구의 국립4.19민주묘지에는 민주열사 459위의 영령들이 고이 잠들어 있다.

국립 4.19민주묘지 내에 있는 4월 혁명 기념탑에는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라는 내용의 글귀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코로나19 4차 유행 조짐이 보이는 요즘, 자연은 어김없이 산과 들에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틔우고 있다.

답답한 실내보다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국립4.19민주묘지를 가족·친지들과 방문하여 참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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