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로 재정 풀었는데…실물경제 돈맥경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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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로 재정 풀었는데…실물경제 돈맥경화 심화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1.04.13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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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시장 불확실성 증가에 넘쳐나는 돈 '윤활유' 역할 못해
금융시장 불균형 심화...인플레 자극 통화가치 하락 우려도
시중 유동성이 역대급으로 넘쳐나고 있지만, 실물경제로 자금이 흘러가지 못하는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사진은 하나은행 직원이 5만원권 지폐를 검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중 유동성이 역대급으로 넘쳐나고 있지만, 실물경제로 자금이 흘러가지 못하는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시중은행 직원이 5만원권 지폐를 검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지난 1월 시중에 풀린 돈이 3270조원을 넘어섰다. 한 달 새 약 42조원이나 늘어나 사상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돈이 풀리고 있지만 정작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홍수처럼 불어난 자금은 실물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거나 금고 안에 웅크리고 있다.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데다 지난해 유동성을 흡수했던 자산시장의 힘이 빠지면서, 경제주체들은 여유자금을 은행에 쌓아놓기에 여념이 없다.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할 경우 화폐 유통 속도가 떨어져 실물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올해 1월 시중에 풀린 돈은 사상 처음으로 32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월에도 역대급 증가폭을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274조 4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41조8000억원이 늘어났다. 2001년 12월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폭의 증가다.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는 올해 더욱 빨라진 모양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56조6000억원이 늘어났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10%대에 접어든 것은 2009년 10월 이후 11년 3개월 만이다.

문제는 돈이 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돈맥경화의 대표적인 지표로 꼽히는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증가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월 요구불예금은 11조원,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9조2000억원 불어났다.),

회전율도 바닥이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상품으로, 회전율이 낮을수록 경제주체들이 자금을 은행에 예치해둔 채 꺼내 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지난해 8월 15.5회로 최저 기록을 경신한 뒤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월별 기준으로 20회 이상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같은 추세는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이다. 올해 1월 회전율 역시 16.5회로 20회를 밑돌았다. 올해 들어서만 50조원 가까이 불어난 요구불예금이 은행 금고 속에서만 잠자고 있는 것이다.
 
단기자금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돈이 시중에 돌지 않는 단기부동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반적인 금리가 하향 조정돼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투자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금들이 묶여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산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는 등 미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유동성 형태로 자금을 관리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다만 이 같은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동성이 단기자금 위주로 흘러갈 경우,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는 자금의 장기적 운용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통화당국인 한은도 금융시장 불균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25일 발표한 ‘3월 금융안정상황’에서 “실물경제 여건에 비해 과도한 신용축적 및 자산가격 상승이 지속되면서 대내외 충격에 대한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증대됐다”며 “부문간, 업종간 경기회복이 불균등(K자형)하게 진행되면서 정부지원 조치 등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신용 리스크가 현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5%까지 낮춘 뒤 1년 가까이 이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은 회수되지 못한 채 인플레이션을 자극, 통화 가치 하락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때문에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으로선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자칫 취약층의 자금 경색을 일으켜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고, 가만히 있자니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걸 손 놓고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미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나라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 결국 시장과의 사전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금리의 정상화 시점을 앞당길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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