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벼랑끝 전술’로 잃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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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벼랑끝 전술’로 잃어버린 것
  • 조성준 기자
  • 승인 2021.04.1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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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산업부 기자.
조성준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기한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 전격 합의로 마무리됐다.

K-배터리에 큰 걸림돌이었던 양사의 분쟁이 해결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SK이노베이션, 더 나아가 SK그룹이 이번 분쟁에서 보여준 태도다.

양사는 지난 2019년 4월 당시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인력과 기술을 빼갔다며 배터리 영업비밀침해소송을 제기한 이후 2년 동안 두 회사는 치열한 싸움을 펼쳐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ITC가 영업비밀침해 소송에 대한 LG측 승리 취지의 예비 결정 이전에 합의 기회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당시에도 다툼이 결국 LG측 인력을 대거 고용하면서 비롯된 만큼 예비 결정 방향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다.

만약 그 이전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적극적인 합의 노력을 보였다면 기업이미지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고 합의금 규모도 줄이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ITC 예비 결정이 있은 이후 작년 9월 나기로 했던 최종 결정 기일이 세 차례나 연기되면서 미국 내부의 입김이 먹혀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오해 내지 환상이 업계에 조심스레 흘렀다. ITC는 연기 사유를 특별히 밝히지 않았으나 코로나19 여파가 영향이 있다는 정도로 알려졌지만 연거푸 최종 결정일이 연기된 것은 당시로서는 LG 측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고, SK 측은 기대를 걸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ITC는 예비 결정을 최종 결정으로 확정하면서 SK이노베이션은 궁지에 몰렸다. 협상에 확실히 불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ITC의 최종 결정을 뒤집을 유일한 수단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밖에 없었다. SK 측은 샐리 예이츠 미 전 법무부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하는 등 미국 조지아 주의회와 바이든 정부를 향한 로비전을 펼쳤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답장은 거부권이 아닌 합의 종용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LG 완승으로 결정난 ITC 판단에 거부권을 행사할 실익이 있었을까? 이제 막 취임한 상황에서 그러한 결단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이 부분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SK이노베이션의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무리한 시나리오였다고 생각된다.

ITC 최종 결정이 나고 60일간의 미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한이 임박하면서 누가 봐도 불리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인 SK이노베이션이 여전히 상대를 비난하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항전 의지를 보이는 것을 좋게 본 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것이 복잡한 소송이었고, 개인이 아닌 대기업 간의 싸움이어서 시시비비가 희석돼 판단이 어려워지는 것이었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합의로 잘 마무리됐지만 분쟁 과정에서 보여준 SK이노베이션의 태도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전면에 외치면서 뒤로는 사안 본질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화가 아닌 외생변수를 기대한 로비로 다툼을 해결하려 드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겼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월 SK이노베이션 기업신용등급 및 선순위 무담보 채권등급을 'Baa2'에서 'Baa3'으로 하향조정했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신용등급을 'BBB' 등급에서 투자 등급 최하단인 'BBB-' 등급으로 내렸다.

결국 바이든 미 대통령에 매달린 SK이노베이션의 벼랑끝 전술은 막을 내렸다. 2조원 규모의 합의금은 기존 LG 측 3조원, SK 측 1조원 이내 주장을 비춰볼 때 중간선으로, 어느 쪽의 승리도 아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소송전에 매달리느라 낭비되던 에너지를 이제 온전히 업무역량에 쏟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K이노베이션이 ITC 최종 결정으로 10년 동안 미국 내 배터리 사업 금지 조치를 대기하고도 떳떳하게 고개 들 수 있는 정신력과 강단을 미래 사업에 투영한다면 분명히 배터리 글로벌 톱 티어로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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