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하지 말란 법 있냐” LH 직원 글이 궤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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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자하지 말란 법 있냐” LH 직원 글이 궤변인 이유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1.03.07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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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분이 일고 있다. 정작 LH 내부에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LH의 한 직원은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느냐”고 적었다.

그는 “내부정보를 활용해 부정하게 투기한 것인지 본인이 공부한 것을 토대로 투자한 건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LH 직원은 “1만명 넘는 직원 중 광명에 땅 사둔 사람들이 걸렸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내부정보 악용한 것 마냥 시끌시끌하다”며 “막말로 다른 공기업·공무원 등 공직 쪽에 종사하는 직원 중 광명 쪽에 땅 산 사람 한 명 없겠냐”고 항변했다.

이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범법행위가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LH 직원들이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지 한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세상 모든 건 자본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의 해답은 미국 듀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면서 행동경제학의 권위자인 댄 애리얼리의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컴퓨터로 아주 단순하고 따분한 과제를 하나 설정하고 이를 다수의 실험참가자에게 수행하도록 했다. 

첫 번째 실험참가자들에게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5달러의 보상을 주었다. 두 번째 참가자들에게는 그보다 적은 50센트의 보수를, 마지막 세 번째 참가자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조금 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세 집단의 실험참가자들은 과제를 얼마나 열심히 수행했을까. 5달러를 받은 집단은 평균 159개의 작업을 해냈다. 10분의 1 수준인 50센트를 보상으로 받은 집단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101개를 성공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호의와 자율성만으로 이 작업을 수행했던 마지막 집단은 평균 168개를 성공했다. 5달러를 받은 사람들보다도 조금 더 높은 성과였다. 이는 사회규범이 때때로 시장규칙을 압도한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다.

애리얼리 교수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의 충돌을 설명할 때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 사례를 자주 인용한다. 이 탁아소는 부모들이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올 때 벌금을 부과했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가 줄어야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부모가 늘었다. 

과거에는 아이를 데리러 오는 시간이 사회규범 영역이었기에 늦게 오면 교사에게 미안해해야 했으나 벌금이 부과되니 아이를 데리러 오는 시간이 시장규칙으로 바뀐 것이다. 벌금을 내고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늘었다.

탁아소에서 벌금 제도를 없애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돈도 안 내게 됐으니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가 더 늘어난 것이다. 애리얼리 교수는 이 사례를 통해 사회에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이 있으며 사회규범이 적용되던 분야가 한 번 시장규칙에 노출되면 사회규범은 힘을 잃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돈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하다고 하더라도 사회규범 즉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인 양심과 도덕, 윤리, 명예 등은 사람을 올바르면서도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LH 직원들이 법적인 책임을 면할지라도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이유다.

사회규범 즉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인 양심과 도덕, 윤리, 명예 등은 사람을 올바르면서도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돈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임계점이다. 그렇기에 LH 직원들이 법적인 책임을 면할지라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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