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기획] 요람에서 무덤까지?…끝없는 경쟁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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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주년기획] 요람에서 무덤까지?…끝없는 경쟁지옥
  • 이선율 기자
  • 승인 2013.06.26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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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국인] 불안의 시대, 희망 만들기

[매일일보] 다가올 위기에 대한 경고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되는 관용구로 ‘탄광 속의 카나리아(Canary in a Coal Mine)’라는 말이 있다. 사람보다 메탄 등 독가스에 예민한 카나리아가 죽는 것을 보면서 광부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탄광에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가던 시절 일부 탄광주인들이 카나리아 때문에 광부들이 더 불안해한다며 카나리아 반입을 제지했다는 이야기는, 사람이 바로 옆에서 줄줄이 죽어나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세계 최다 자살국가’이자 ‘세계 최저 출산국가’ 대한민국을 연상시킨다.

최근 발표된 OECD 주요국 행복지수를 보면 대한민국은 안전(10점 만점에 9.1)과 교육(7.9), 시민참여(7.5)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반면 공동체(1.6), 소득(2.1), 삶의 만족도(4.2), 건강(4.9), 일과 생활의 균형·고용·환경(각각 5.3)에서 불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정확한 처방도 가능한 법. 매일일보는 창간 7주년을 맞아 ‘2013년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세대별 주요 복지이슈를 짚어보고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의 장을 펼쳐보았다. ※편집자주

 

‘창의력’ 평가한다니 자유 시간 대신 창의력 학원…

‘뒤처짐 공포’ 커질수록 커져만 가는 ‘사교육 시장’

대한민국의 뜨거운 교육열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들이 늘고 있고, 대도시 지역의 경우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놀이터’가 아닌 ‘학원’에 가야할 정도이다.

특히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용도 높게 나타난다는 통계는 자기 아이에게 더 많은 사교육 기회를 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심지어 교육당국이 사교육 억제를 위해 ‘창의교육’이나 ‘논술강화’를 내세우면, 창의력 학원이나 논술학원이 등장한다.

전체 사교육비 지출은 2009년 이후 3년 연속 줄었지만, 소득 수준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불안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사교육 경쟁이 본질적으로는 ‘부모의 소득경쟁’이라는 말이다. 

통계청의 ‘2012년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의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42만 6000원이지만 100만원 미만인 가구의 평균 사교육비는 6만 8000원으로 소득 수준에 따른 지출 격차는 상당했다.

사교육 참여율도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인 가구는 83.8%에 달했지만, 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는 33.5%로 2배 이상 차이났다. 부모가 대졸 이상인 경우 아이들의 사교육 참여율은 80%를 넘어선 반면, 중졸 이하 부모를 둔 아이들의 사교육 참여율은 44.8%였다.

뒤처짐에 대한 ‘공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시키는 원인으로 선행학습(59.9%)과 학교 수업 보충(52.3%)을 가장 많이 꼽았고 그 밖에 불안 심리(33.1%), 진학 준비(32%) 등이 이유로 나타났으며 맞벌이 등으로 인한 보육 목적은 3%에 불과했다.

이는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에 ‘내 아이가 남보다 더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내 아이가 남보다 뒤떨어진 인생을 살면 어떻게 하나’하는 공포심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이지수(45·여·가명)씨는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 둘을 교육 시키는데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며 “우리도 별로 많이 안 쓰는 편이며, 보통 사교육비용으로 다른 집들은 월 200여만원까지도 쓴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변 애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선행학습을 많이 시키고 있다”며, “우리 아이만 교육을 못시켜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기 싫어 학원에 보낸다”고 말했다.

초등생부터 ‘명문대’ 생각

1969년 중학교 입시 폐지,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1980년대 과외금지·대학 본고사 폐지 등 점차 ‘경쟁교육’ 해소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오던 우리 교육정책은 이명박정부의 등장과 함께 노골적인 경쟁시대를 열었다.

2000년에는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판결’에 이어 한동안 외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 입시 열풍이 불더니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데 이어 이명박정부의 ‘경쟁 위주 교육’ 부활 정책과 맞물려 국제중학교가 등장하면서 사실상의 중학교 입시부활이 이루어졌다.

이명박정부라는 독특한 시기에 앞서 헌재 판결로 사교육 억제 정책이 폐기된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로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사교육 시장에 대한 국민 일반의 ‘수요’가 있었고 모든 수요는 ‘명문대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쏠려있다.

한정된 명문대 입학정원과 통제불가능한 수준의 폭발적 수요를 배경에 깔고 있는 상황에서 사립초등학교와 입시명문고등학교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 국제중학교의 등장을 생각하면 최근 사회적 파장을 낳은 서울 영훈국제중학교의 신입생 선발 비리는 예고된 인재로 평가된다.

국제중의 표면적 설립 취지는 △글로벌 인재 양성 △해외 귀국 학생의 국내 학교 적응 유도 △조기 유학 수요 흡수 등이었지만 1000만원이 넘는 연간 학비에 졸업생 대부분이 특목고, 자사고 등 ‘대입 명문고’로 진학하면서 1% 부유층 자녀들만의 ‘귀족학교’라는 눈총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국제중 입시 비리 해결을 위해 서류전형 단계적 완전폐지와 지원자 전원 전산 추첨 선발을 제시했지만 정치권과 교육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입시비리가 발생한 근본원인에 대한 고민없는 최악의 대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중학교 진학을 로또 당첨에 응모하는 것처럼 바꾸는 것은 입학 기대만 부풀려서 사교육 증가를 불러올 뿐”이라고 꼬집었고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연 1500만원의 학비를 내는 귀족학교 선발을 공개추첨으로 바꾼다고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진후 진보정의당 국회의원은 지난 5월 매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중학교의 폐해는 특목고가 낳는 여러 폐해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며 “개선책은 폐지하는 것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진후 의원은 “개별 아이들의 꿈과 끼를 죽이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봤을 때 다른 초중고등학교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서 다른 학교들을 아예 슬럼화시키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제중학교는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입, 끝 아닌 취업경쟁의 시작일 뿐

[사례] 취업준비생에게 들어본 ‘스펙 쌓기’ 실태

#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박모(28)군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한 학기 휴학을 한 상태다. 그는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대외활동 및 인턴 등 다양한 활동을 했고, 토익도 890점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이력서만 40여 군데 썼지만 서류통과한 곳은 5곳 뿐이다. 서류합격한 곳에서도 2차, 3차, 4차, 5차까지 깐깐한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박군은 면접준비를 위해 모 카페에서 진행되는 면접대비특강을 신청해 듣고 있으며 영어면접을 위해서 영어학원도 등록했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모군은 “이 모든 고생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취업을 위해서라면 이정도 시간과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 서울 구로구에 사는 한모(26)양은 지난 2월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을 못했다. 그는 6개월간 일본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다녀온 후 부지런히 공부해 토익 800점 초반, 일본어자격증 및 각종 컴퓨터자격증을 취득했다.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등도 다양하게 해왔지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할 때 취업하기에는 그의 스펙이 빈곤하다. 그래서 20여군데 서류전형에서 모두 탈락해 이번엔 토익점수 올리기 위해 강남에 위치한 학원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

목숨 걸 듯이 피땀 흘려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경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경쟁’인 취업 경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통계청과 한국고용정보원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특성화 고교나 대학 시절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첫 일자리를 잡은 청년 취업자 비율은 2001년 이전 평균 72.8%에서 2010∼2011년 77.1%로 4.3%포인트 증가했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 100명 중 77명은 전공과는 무관하게 첫 직장을 얻어 대학 교육이 사실상 쓸모없어졌다는 말이다.

취업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더 나은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구직자들이 늘고 있다. 영어시험부터 취업면접 대비에 이르기까지 취업 사교육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불황이 몇 년째 계속되면서 과거 컴퓨터 사양을 이야기할 때나 쓰던 ‘스펙’이란 말이 구직 이력서에 한 줄 넣을 학력·학점·토익점수 등의 주요 사항을 이르는 말로 바뀌었고, 이러한 스펙을 웬만큼 가져도 변변한 직장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턱에서 청년들은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도 많이 소모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대기업, 공기업 등 소위 말하는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선 이 정도 시간과 비용 투자는 거뜬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스펙이 높을 경우 좋은 직장을 골라서 갈 수 있는 반면, 스펙이 낮을 경우 변변한 직장 하나 구하기가 어렵다. 이렇듯 구직자별 양극화 현상도 심각하다.

취업이 안 돼 장기간 구직활동을 하는 구직자가 있는 반면, 복수의 기업에 이미 합격해 원하는 곳을 골라 취업하는 구직자가 있는 등 취업에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초등학교부터 사교육에 길들여진 취업준비생들은 불안한 마음을 취업과외로 달래고 있다.

지난 11일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생 및 구직자 758명을 대상으로 ‘취업 사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 34.8%가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특히, 구직자(33.9%)보다 대학생(39.4%)의 사교육 경험이 더 많았다.

취업 사교육을 받은 이유를 살펴보면 ‘취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70.5%, 복수응답)가 1위를 차지했다. 계속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잘 몰라서’(32.6%), ‘다른 방법보다 효과적이어서’(25%), ‘혼자 할 자신이 없어서’(24.6%), ‘학교 교육으로는 부족해서’(22.3%), ‘안 받자니 불안해서’(21.2%)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들은 1인당 평균 3종류의 사교육을 받았으며 사교육비 지출은 한달 평균 34만원으로 집계됐다. 취업 사교육을 받는 사람의 67.1%가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취업 사교육을 받지 않은 응답자(494명)들은 ‘비용이 부담스러워서’(56.7%, 복수응답)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고 ‘혼자 준비해도 충분해서’라는 응답은 12.1%에 불과했다. 가정형편만 뒷받침된다면 언제든 취업 사교육을 받을 의사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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