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의 역설… 후보지 선정되자 수억원 ‘웃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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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개발의 역설… 후보지 선정되자 수억원 ‘웃돈’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1.01.21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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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개발 활성화 방침에 투기 수요 몰려
1월 연립·다세대 거래량 아파트보다 2배 많아
공공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2구역의 모습 [연합뉴스]
공공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2구역 전경.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지난해 초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로 매수한 이후 현재까지 6000만원 정도 올랐어요. 내년에 보유 기간이 2년을 넘기면 양도소득세 기본세율(6~42%)에 10%만 더 내면 돼서 매도할 예정입니다. 이미 사겠다는 사람과 계약을 마친 상태고요”(녹번2구역 빌라 소유자 A씨)

정부가 지난해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공공재개발을 도입하기로 한 이래로 다세대·연립 등 빌라 강세가 심상찮다. 아파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데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진 여파다. 지역 균형발전과 시장안정이라는 애초 취지와 달리 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 

2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서울의 빌라 매매 건수는 1205건으로 같은 기간 아파트 거래(676건)의 약 2배에 달했다. 지난해 1월 거래량이 아파트 6505건, 다세대·연립주택 3942건을 각각 기록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다.

지난 한 해 빌라 거래량은 5만7607건으로 서울 전체 주택 거래량(14만8620건)의 38.8%를 차지했다. 2016년 30.61%, 2017년 29.5%, 2018년 33.4%, 2019년 33.1% 등 지난 5년간 30% 초반대를 유지하던 거래량이 지난해엔 40% 가까이 급증했다. 

가격 상승세도 가파르다. KB부동산 자료를 보면면 지난해 7~12월 5개월 동안 서울의 빌라 평균 매매가격은 2억9881만원에서 3억1946만원으로 2065만원 상승했다. 직전 2년(2018년 7월~2020년 7월) 상승분(2078만원)과 비슷한 수치다.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흑석2구역의 경우 최근 수억원의 웃돈이 붙어 매물이 나왔는데 이마저도 다들 매물을 거둬들여 귀한 상황이다. 흑석2구역 B공인중개소 대표는 “지난해 빌라 평균 시세가 3.3㎡당 1700만원 정도였지만 현재는 2000만원 대 중반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들어 흑석11구역의 대지 지분 29.7㎡(9평) 매물이 12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면서 “이 덕에 인근 지역 집값도 덩달아 뛰었다. 30평형대 빌라가 7억원을 호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기를 증명하듯 강북의 한 재개발 지역 빌라에서 세 들어 산다는 B씨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집주인이 3번 바뀌었다”면서 “사업추진이 순탄치 않아 다소 위험 부담이 있다고 판단하는지 단타로 이익을 보고 빠져나갔다”고 귀띔했다.

덧붙여 “그동안 거쳐 간 집주인들은 전셋값을 올려 받지 않았지만, 올해 양도세와 보유세가 오르면서 그 부담을 언제든 전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며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역에선 일명 ‘지분 쪼개기’가 성행하고 있다. 지분 쪼개기란 하나의 필지를 여러 개로 분할하거나 단독·다가구주택을 빌라로 전환해 조합원 수를 늘리는 수법이다. 토지와 건축물을 분리 취득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전농9구역 인근 C 공인중개소 대표는 “2018년을 기점으로 신축 빌라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면서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해 행위제한이 풀렸던 지역 대부분 사정이 비슷하다. 조합원 숫자가 늘어나면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개발을 노린 빌라 투자가 그리 녹록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빌라 투자는 재개발사업 원활하게 진행된다는 전제하는 것이어서 변수가 생기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굉장히 위험한 투자로 가볍게 생각하고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며 “건축 연도와 입지가 같다고 해도 시세에 격차가 크다 보니 적정한 가격에 투자하는 것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개발 추진이 어려운 데도 이를 미끼로 빌라를 팔아 수수료를 챙기는 업자들이 있다”면서 “입주권은커녕 아파트와 비교해 훨씬 큰 감가상각에 재산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공공재개발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후부터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대처가 없다”면서 “공공재개발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인지 집값을 띄우겠다는 정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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