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회장 퇴임 1년 황태자에겐 크기만 한 텅 빈 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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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 퇴임 1년 황태자에겐 크기만 한 텅 빈 옥좌
  • 권민경 기자
  • 승인 2009.07.10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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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그룹 개혁, 체질개선, 변화는 현재 진행 중
경제위기 파고에도 계열사 실적 개선은 성공
미래 경영키워드 없어 성장 동력 마련 난항
리더십 부재 속 차기 삼성 대권주자 관심 높아

이건희 회장이 ‘삼성 사원증’을 반납하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삼성은 이 전 회장 퇴진 외에도 전략기획실 해체, 계열사 독립경영체제 도입, 사옥 이전, 조직 개편 등 안팎으로 큰 변화를 겪어왔다. 창사 이래 최대의 변화를 모색하는 와중에 전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겹쳐 계열사의 실적이 악화되는 등 독립경영 출발부터 순탄치 않은 대내외 환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삼성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다. 악재 속에서도 선방했다는 평가가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 다만 이 전 회장 특유의 카리스마 경영이 사라진 지금 리더십 부재는 여전히 삼성의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5년 후 10년 후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 또한 삼성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지만 이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의사결정구조가 해체된 상황에서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삼성의 변화와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런 가운데 이 전 회장을 대신해 미래의 삼성을 이끌어 갈 후계자에 대해서도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차기 대권 후계 1순위였던 이재용 전무와 함께 최근에는 이 전 회장의 맏딸 이부진 전무도 후계구도의 새로운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4월 22일 태평로 삼성 사옥에서 이건희 회장은 ‘퇴진’하겠다는 뜻과 함께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이어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경영기획실 사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작업이 6월 30일까지 차례로 이어졌고, 7월 1일 이 회장은 사원증을 반납했다.

‘뉴 삼성’ 만들기 여전히 진행 중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특검의 회오리는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이어져 온 삼성의 경영체제를 근간부터 흔들어놓았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삼성을 이끌어온 이건희 회장과 그룹 컨트롤 타워였던 전략기획실, 계열사 CEO라는 삼각체제는 사장단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됐다.

그 뒤 1년 여 동안 삼성에는 많은 변화가 있어왔고, 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 <이건희 전 회장>

기존 전략기획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여하는 사장단협의회를 만들고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 브랜드관리위원회, 인사위원회 등 3개 위원회를 통해 그룹의 주요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협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사옥이 서초동 삼성타운으로 이주를 마쳐 그룹의 새로운 진용이 갖춰졌다.

올해 초에는 전 계열사 사장단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물갈이에 들어가 만 60세 이상 사장들을 모두 교체하기도 했다.

이어진 계열사 임원인사에서도 만 57세 이상 임원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력 삼성전자의 경우 800여명의 임원 중 3분의 2가 보직 변경됐다.

이와 함께 조직슬림화, 현장경영 강화를 축으로 강도 높은 조직개편이 단행되기도 했다.

지난 1년 간 삼성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그룹 안팎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당초 재계에서는 독립경영이 삼성에 가지고 올 파장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높았다. 세계적 금융위기까지 겹쳐 경영환경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건희 전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은 없어졌지만 ‘관리’의 삼성에서 ‘효율과 창의’의 삼성으로 변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최근 경영실적을 보면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선방한 삼성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이래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업계의 숱한 우려를 낳았다. 이 전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부재를 입증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예상외의 호조를 보인 데 이어, 지난 6일 삼성전자가 직접 발표한 2분기 예상 실적에 따르면 시장의 기대를 배 이상 뛰어넘는 실적을 올렸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2분기 영업이익은 연결기준으로 2조2,000억~2조6,000억 수준. 시장 전망치를 배 이상 웃도는 깜짝 실적이다.

3분기 실적 역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현재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깜짝 실적은 삼성전자는 물론 IT업종 주가에 상승탄력을 불어넣고 있어 역시 ‘삼성’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건희’라는 이름이 곧 ‘삼성’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만큼 오늘날의 초일류 기업 삼성을 일궈낸 이 전 회장의 공백은 여전히 크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기도 하다. ‘삼성’이라는 이름의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 <이재용>

실제로 삼성 내부적으로도 리더십의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들은 “삼성은 큰 변화 속에서도 잘 헤쳐 나가고 있지만 무엇보다 5~10년 이후의 장기과제에 대한 의사결정에 대해 가장 큰 고민을 하고 있다”며 “각 사별 독립경영체제 아래에서 발전은잘 해나갈 수 있겠지만 중간 중간 도약을 이끄는 힘, 리더십에 대한 부분은 삼성 내외의 공통된 고민거리”라고 말한다.

글로벌 위기 속 삼성 실적 선방

그동안 삼성은 위기의 순간 마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삼아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1993년 이 전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삼성 임직원들에게 양(量 )이 아닌 질(質)위주의 경영을 강조했고, 이것이 오늘날 삼성의 ‘1등주의’를 만든 근간이 됐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이 전 회장은 신년사에서 ‘내 탓이오’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난다”는 ‘연 경영론’을 주창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또 지난 2006년 미국 뉴욕에서 주재한 사장단 회의에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적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의 것만 카피해서는 독자성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이 전 회장의 지론은 삼성이 초일류 기업에 한 발짝 다가서는 원동력이 됐다.

중요한 타이밍마다 이처럼 미래의 경영키워드를 제시해온 이 전 회장의 부재는 확실히 그룹의 미래 사업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략기획실 대신 대규모 투자 건을 논의할 투자조정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별다른 활동이 없어, 미래 먹거리를 위한 삼성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 경쟁력의 핵심인 수직 계열화와 계열사간 시너지 측면에도 우려의 시각이 존재한다. 독립 경영 하에서는 개별 CEO들이 자신만의 리더십을 확고히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서 계열사간의 팀웍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인사들 가운데는 이 전 회장의 삼성 총수 복귀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은 “이 전 회장이 복귀해야 한다”며 공식석상에서 언급했을 정도다.

이처럼 이 전 회장과 그의 카리스마 경영에 대한 향수가 계속되면서 그의 공백을 채워줄 후계자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전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 1순위인 이재용 전무와 함께 최근에는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또한 재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재용 전무는 그동안 삼성그룹을 이끌 차기 대권후계자로 여겨져 왔다.

지난 5월 삼성재판 상고심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법적 문제가 해소된 만큼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한 이 전무의 지배구조 또한 공고해져 승계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물론 이재용 전무에게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을 물려받기에 무리가 없다는 확신을 그룹 안팎에 심어줘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지난해 4월 삼성의 쇄신안을 발표했던 이학수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권을 승계하면 불행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회장 또한 이재용 전무가 그룹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사실 이재용 전무는 19991년 삼성에 입사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 한때는 그의  경영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재용 전무를 언급할 때면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그의 주도로 이뤄졌던 IT사업 ‘e삼성’의 실패 사례였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이재용 전무는 본격적으로 대외행보에 박차를 가하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미국, 유럽을 돌며 주요 거래선을 만나 시장 확대를 논의하는 가하면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와의 잇단 회동을 통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재용 전무의 이런 행보는 경영능력에 대한 우려를 털어내고 그룹 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수순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재용 전무와 함께 최근 부쩍 주목받는 인물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부진 전무가 사석에서 “오빠와 경영능력에서 한번 경쟁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증권가를 중심으로 ‘삼성그룹 내부에서 이재용 전무와 이부진 전무의 후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의 카리스마와 추진력을 꼭 빼닮았고 알려진 이부진 전무는 지난 2004년 호텔신라 임원에 오른 뒤 실적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고,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 샤넬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 유치 등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이 전 회장의 자녀들 가운데 유일하게 승진했다.

이재용·부진 남매 후계구도 관심

올해 들어서는 특히 호텔신라와 에버랜드의 사업 협력이 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며 이부진 전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만큼 이부진 전무의 에버랜드 경영참여가 결국 그룹 후계구도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권민경 기자 <kyoung@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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