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치는 총탄을 철마로 헤쳐나간 '철도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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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치는 총탄을 철마로 헤쳐나간 '철도참전용사'
  • 정재우 기자
  • 승인 2013.06.02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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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한 옹, 6·25 전쟁 중 중앙선 오가며 임무 수행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철도 기념관 앞에서 김노한(87) 옹이 인터뷰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교통부 안동철도국 소속 기관사였던 김 옹은 다수의 군사수송작전에 참여했다.

▲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철도 기념관 앞에서 김노한(87) 옹이 인터뷰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교통부 안동철도국 소속 기관사였던 김 옹은 다수의 군사수송작전에 참여했다.
[매일일보] "피투성이가 된 국군을 끌어안아 열차에 태울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고…"

30일 63년 전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을 떠올린 김노한(87) 옹은 잠시 목이 멨다.

교통부 안동철도국 소속 기관사였던 김 옹 기억 속 1950년 7월의 영주역은 소백산 자락에 자리해 아늑하고 조용했던 예전의 그곳이 아니었다.

북한군이 쏜 포탄으로 아수라장이 된 역에서 믿을 것이라곤 철로 위에 선 '미카' 기관차밖에 없었다고 김 옹은 회상했다.

멀지 않은 곳에 북한군이 있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 피리 소리와 '살려달라'는 젊은 병사의 외침이 뒤섞인 영주역에서 김 옹은 "부상병을 열차에 싣고 정신없이 기관차를 몰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전쟁은 김 옹에게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모든 기관사가 군사수송작전에 투입된 상황에서 김 옹은 '미카3형 171호' 기관차를 몰고 중앙선 철로를 따라 수시로 전장을 오갔다.

"북한군이 진을 친 영주 지역을 지나 죽령에 있는 군수품 열차를 되찾아 올 때는 정말 죽을 뻔했지요."

쏟아지는 총탄을 맞아 부서진 물탱크 곳곳을 작은 나무판자로 덧댄 채 기관차를 몰았다는 김 옹은 "자동차 엔진과 같은 증기 기관차의 물탱크에서 물이 줄줄 샐 때는 정신이 아득해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작전 중 철로가 실오라기같이 가늘게 보일 때도 있었다고 김 옹은 말했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 특히 그랬다. "소백산을 타고 넘는 중앙선 특성상 터널이 많다"고 설명한 김 옹은 "북한군이 숨어 있다가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공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몸서리쳤다.하루가 멀다 하고 생사기로에 섰던 김 옹은 "단선 철로인 중앙선을 오르락내리락하다 앞에서 달려오는 다른 열차와 맞닥뜨리는 순간도 아찔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기관차를 내팽개치고 도망칠 법도 하지만 김 옹은 전쟁 내내 철마에 올라탔다. 그냥 기관사 일이 좋아서였다.

김 옹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안동역에 취직해 시험을 거쳐 1948년 정식 기관사가 됐다.

"중학교 친구들과 낙동강 철교 밑에서 물놀이하다 미래를 결정했다"는 김 옹은 "까만 모자를 쓰고 하얀 장갑을 낀 채 손을 흔들어 주며 지나가던 기관사의 모습이 뇌리에 콱 박혀 잊을 수 없었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30년 넘게 철로 위에서 울고 웃었던 김 옹은 "은퇴 후에는 평온하게 일상을 보냈다"고 했다.

고향인 안동 인근에서 지내는 김 옹은 이날 호국철도기념관 개관식이 열리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특별한 발걸음을 했다.

대전현충원에는 6·25 전쟁에서 미군 소장 구출작전에 투입된 호국철도가 전시돼 있다. 미카3형 129호 기관차로, 김 옹이 운전한 것과 같은 모델이다.

"오랜만에 기관차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는 김 옹은 "호국철도기념관을 찾는 많은 이가 전쟁에 참여한 철도인의 희생정신과 활약상을 잊지 말아 달라"고 소박한 희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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