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왜 ‘신경영 선언’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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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왜 ‘신경영 선언’ 인가
  • 이상래 기자
  • 승인 2020.10.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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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타성에 젖어 있었다.

당시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고,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해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 회장은 이런 수준으로는 세계 초일류기업은 고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조차 없겠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이 회장의 결론이었다.

마침내 이 회장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현지 매장에서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는 삼성 제품. 이 회장은 통탄했다.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다.”

이 회장은 이대로 있으면 삼류, 사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바랬다. 그것은, 양(量)이냐 질(質)이냐의 선택이었고, 국내 제일에 머물 것인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초일류로 도약할 것인가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그 유명한 ‘신경영 선언’이 나오게 됐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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