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 통찰력과 결단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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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 통찰력과 결단의 순간들
  • 이상래 기자
  • 승인 2020.10.25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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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휴대폰 사업, 이건희 과감한 승부수 결실
삼성, 추격자에서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우뚝’
2004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 30주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2004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 30주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한국의 삼성이 세계의 삼성으로 뻗어가는 역사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걸어온 발자취를 이렇게 표현했다. 30여년 전 국내에서는 최고 기업으로 인정받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삼성. 이 회장은 취임 후 특유의 통찰력과 결단력으로 이러한 세간의 평가를 뒤집었다

25일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리더십이 반도체, 스마트폰, TV·가전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리딩 기업 삼성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실 과거 삼성은 반도체, 휴대폰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다. 진출도 늦었고 기술력도 뒤쳐졌다. 1970년대 삼성 경영진마저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느냐’며 반도체 진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첨단기술 산업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이 삼성의 살길이라고 확신했다. 삼성은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를 시작으로 반도체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이 회장의 결단력이 빛을 발했다. 당시 '1차 오일쇼크' 여파로 페어차일드, 인텔, 내쇼널 등 세계적 업체들이 구조조정과 감산에 나서는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결국 삼성은 1975년 전자손목시계용 집적회로 칩을 개발한 데 이어 이듬해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최첨단이던 3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설비도 부천공장에 갖췄다. 1982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며 성과를 냈다. 그로부터 10년 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 반도체 강자로 부상했다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의 통찰력과 결단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휴대폰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1994년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4위였다. 하지만 한 사건이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바로 ‘애니콜 화형식’.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중안에는 무선전화기 등 삼성 마크가 붙은 전자제품 15만점이 놓였다. 해머를 든 직원들이 제품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이윽고 무선전화기엔 불이 붙었다. 그리고 이 회장은 직접 나서서 “삼성의 품질만은 믿어달라”고 외쳤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1년 만에 삼성이 시장 점유율 19%를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선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일기 시작한 '애니콜 신화'는 국내 시장을 휩쓸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당시 휴대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모토로라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다.

이러한 애니콜의 인기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이어져왔다. 2020년 지금.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25년 전 이 회장의 통찰력과 결단력 그리고 승부수가 밑거름으로 이뤄낸 결과다.

이 회장이 밀어붙였던 TV·가전 역시 10년 넘게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다. 삼성은 글로벌 가전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소니를 2006년에 제치고 세계 TV 시장 1위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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