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반도체에서 갤럭시 신화까지…‘위기를 기회로’ 혁신경영 모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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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반도체에서 갤럭시 신화까지…‘위기를 기회로’ 혁신경영 모델로
  • 문수호 기자
  • 승인 2020.10.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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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경영철학, ‘인간 중시’와 ‘기술 중시’ 토대로 한 ‘신경영’
반도체 사업 대성공 이끌어,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본격 품질경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사진은 16라인 반도체 기공식 당시 모습. 사진=삼성그룹 제공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사진은 16라인 반도체 기공식 당시 모습. 사진=삼성그룹 제공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고(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과감한 판단과 빠른 의사결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적 안목과 결정적인 순간 통념을 깬 역발상은 오늘날 삼성이 있게 한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 중시’와 ‘기술 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을 선보였다.

사업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 사업에 착수했다. 대표적 업적으로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린 것을 들 수 있다.

삼성은 1987년 4메가 D램 개발 경쟁이 붙었을 때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방식을 스택(stack)으로 할지,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고, 트렌치는 밑으로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개발진 사이에서도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의견이 양 갈래로 나뉘었다.

당시 경영진이 생소한 기술이었던 스택 공법을 도입하는데 주저하자, 이 회장은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결정을 내렸다.

이 한마디로 반도체 사업은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삼성전자는 당시 트렌치 방식을 택했던 경쟁업체를 밀어낼 수 있었다. 삼성은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이건희 회장의 양보다 질을 중시한 사업가 정신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사건도 있었다. 바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신경영’ 선언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 불리는 이 변화는 불량세탁기 조립 사건이 계기였다.

1993년  신경영 발표 당시 이건희 회장의 모습. 사진=삼성그룹 제공
1993년 신경영 발표 당시 이건희 회장의 모습. 사진=삼성그룹 제공

1993년 6월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이건희 회장 앞으로 삼성 사내방송팀이 제작한 30분짜리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전달된다. 당시 비디오테이프에는 세탁기 생산라인 직원들이 세탁기 뚜껑 규격이 맞지 않자 칼로 뚜껑을 깎아내 본체에 붙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의 소집령이 떨어져 삼성전자 사장단과 임원, 해외 주재원 등 200여명이 프랑크푸르트에 모였다. 이후 삼성은 양 위주 생산 중심에서 질을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경영구조로 바뀌었다.

이 회장의 주요 경영철학인 ‘메기론’도 이때 나왔다. 미꾸라지를 키우는 논에 천적인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생존을 위해 힘도 세지고 날렵해진다는 것이다. 외부 인재를 투입해 내부 경쟁을 유발하겠다는 취지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1994년 제품 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무선전화기 품질 사고 후 현재까지의 실천 경과와 향후 계획을 보고하고, 전 신문에 과거 불량 제품을 교환해주겠다는 광고를 게재해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이후 삼성은 시중에 판매된 무선전화 15만대를 전량 회수해 폐기했다. 150억원어치 제품을 모두 폐기한 이 사건은 ‘애니콜’과 ‘갤럭시’로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1987년 회장 취임 당시 모습. 사진=삼성그룹 제공
1987년 회장 취임 당시 모습. 사진=삼성그룹 제공

이 같은 이 회장의 경영철학을 통해 삼성은 1997년 한국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 TV, 메모리 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으며, 인재 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데 힘써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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